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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배멀미를 이기는 법

 

수천명의 사람들이 먹고 자는 거대한 배였기에 한낱 파도에 쉽게 흔들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호수처럼 잔잔한 지중해를 항해할 때만까지는 밖을 보지 않으면 물위를 달리는 것을 알아채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브롤터 해협을 벗어나서 대서양에 들어서면서부터 배는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육중한 몸짓만큼이나 약 2~3초를 주기로 천천히 흔들렸다. 그리고 배멀미가 시작됐다.


잠깐 흔들리다 말겠지 했지만 흔들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객실에 있으면 몽롱하게 어지러움을 느꼈고, 복도를 걸을 때는 마치 술에 취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식사도 포기한 채로 침대에 납작 업드려서 잠만 잤다.


그동안 10시간이 넘는 버스를 여러번 탔었고, 난기류를 나는 비행기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하며 웃고 떠들었기에 크루즈에서 멀미를 할 줄은 몰랐었다. 이 거대한 탈 것에서 멀미라니...

 

 

 

 

5일째 날, 샤워하다 어렴풋이 내가 왜 멀미를 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크루즈를 타는 순간에 거대한 배의 규모에 위압감과 함께 마치 어딘가 단단히 고정된 건물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 후로도 크루즈 내부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객실과 로비, 레스토랑, 수영장 등등 마치 육상에 있는 고급호텔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내 의식속에는 은연중에 여기가 배가 아니라 지상의 호텔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이런 흔들림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 고집이 멀미를 부른 것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내가 지금 물에 떠있는 배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배의 흔들림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물에 떠있는 것이었기에 흔들리는 것이 당연했고, 당연한 현상이라고 느끼니 마음도 몸도 한결 익숙해졌다.


그렇게 흔들림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몸에 힘을 빼고 배가 흔들리는대로 몸을 맡겼다. 배와 함께 내 몸도 천천히 흔들리도록 놔두었다. 세상은 흔들리고 있는데 나 혼자 버티려고 몸에 힘을 주고 있었으니 어지러움이 생기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흔들리는 세상을 거스르지 않고 내 몸을 맡기자 신기하게도 어지러움이 사라졌다. 그리고 천천히 배의 리듬을 찾아서 내 몸이 적응했다. 바다 위에 배가 흔들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마치 나 혼자 물에 떠있는 듯이 천천히 흔들렸다.


멀미는 시각으로 느껴지는 감각과 귀의 평형 감각과의 혼란으로 생기는 증상이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서로 다른 시그널을 보내는 두 감각을 자연스럽게 이어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세상 일도 그러할 수 있을까?


배멀미에 적응했더니 기항지에 내려서 땅을 밟자 다시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육지 멀미를 하네...

다시 눈을 감는다. 여기 흔들리지 않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