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

세계일주를 떠나는 이유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을 올리는 일기 형식의 포스팅은 안 하리라 했는데, '왜 세계일주를 계획하게 되었는가?' 에 대한 포스팅을 하게 된 이유는 혹시라도 하고 있는 일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분들이 이 글을 본다면 결정을 내리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이다.

 

주변 사람(?)들이 오지랖 기대하는 삶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가 가보고 싶었던 옆길로 새려는 철이 덜 든 직장인의 변명을 들어보자.

 

아주 오래전부터 나의 버킷리스트 1번은 항상 '세계일주하기' 였다. 과연 죽기 전에 할 수나 있을까 생각을 하며 그냥 장식처럼 항상 1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절대 못 할거 같지만 꼭 해보고 싶었기에 1번에 놓여 있었는지 모르겠다.

 

무엇이 세계일주다 라는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이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장기 배낭여행이라는 점이다. 몇 해 전에 13개월의 장기 배낭여행을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조금은 느낌이 온다. 하지만 그 때는 학생이었기에 포기해야 할게 많지 않아서 쉽게 결정을 했겠지만, 회사에 매여있고, 가정이 있는 지금의 나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가장 고민이 되는 것은 안정적인 삶과 도전하는 삶의 사이에서 갈등이다.

세계일주를 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안정적인 삶의 포기이다. 나는 정년이 보장되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에서 너무도 훌륭한 상사와 동료들 속에서 적성에 맞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고, 매년 2~3 주의 휴가가 있어서 여행에 대한 갈증을 푸는데 문제가 없다. 포근한 침실과 깨끗한 욕실이 있는 따뜻한 집이 있고, 손만 뻗으면 언제나 먹을 것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꿈꾸던 세계일주를 마치고 돌아오면 백수에 빈털털이가 될 게 뻔하다. 당장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고, 애매한 나이에 다시 취직을 준비해야 한다. 왜 이런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세계일주를 꿈꾸는가?

 

세계 일주를 하며 계속 돌아다니는 일이 신나고 즐겁기만 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긴 여행 끝에 남들이 얻지 못하는 진리를 얻을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사진을 보며 기억을 곱씹으며 평생 추억에 젖어 살것은 더더욱 아니다.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온갖 고생을 할 것을 알면서도 가고 싶은 이유?

 

사실, 없다.

 

처음에는 비용 지불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자 이런 저런 이유를 만들어 합리화를 시도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 인생에 가장 황금기에 회사를 위해 일만 할 순 없잖아?', '나에게 내일이 없을 수도 있어, 계속 미루다가는 늙어서 오늘을 후회 할 거야!', '하면 안돼는 이유가 더 이상 늘기 전에, 바로 지금이야!', '반복되는 일상에 벗어나, 내가 누군지 돌아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해!' 기타 등등.......

그러나 다 그럴듯하게 나를 스스로 설득하기 위한 말들이었다.

 

나에게 계속 물었다. 꼭 가야하니? 왜?

결국 마지막 대답은 '그냥, 가고 싶어서' 였다.

 

지금까지 항상 무슨 결정을 할 때마다, 적합한 이유가 필요했었다. '~~를 위해서 ---을 하겠어' 라며 행동의 당위성을 만들며 살아왔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냥 하고 싶었던 것을 순수하게 했던 적이 별로 없었다.

아무 이유없이 멍하니 의미없이 시간을 보내거나, 충동적으로 뭔가를 사거나 등을 하면 마음 한 구석에 불안함과 함께 일종의 죄책감이 피어났다. 한국식 교육 방식,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 시장자본주의.... 쉬지 않고 나아가지 않으면 경쟁에서 낙오되고 노후에 비참한 삶을 살거라는 공포 마케팅. 아마도 이런 것들이 나에게 항상 행동의 이유를 묻고 정답을 찾아가려고 했던거 같다. 그리고 사실 이 땅에 살고 있는 한은 벗어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다시 쳇바퀴에서 열심히 뛰더라도 일생에 한 번쯤은 나를 위해 그냥 이유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6개월간 긴 고민 끝에 세계일주를 결심하게 되었다.


여행을 출발하기까지 아직 일년의 준비기간이 남아있다.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미련에 '꼭 가야하니?' 라는 물음이 불쑥 생기겠지만, 더 고민해봤자, '가야할 이유'와 '가지 말아야 할 이유' 들의 싸움일뿐. 그냥 당연히 해야하는 일인 것처럼 준비해서 아무 생각없이 떠날거다.

 

그냥 하고 싶어서.

 


< Kaikoura, New Zealand, 2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