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를 하겠다며 집을 나선지 벌써 100일이 되었다. 네팔, 두바이, 스리랑카, 요르단, 이집트, 요르단, 터키를 거쳐서 지금은 불가리아의 벨리코 타르노보에서 여행 100일을 맞이했다. 벨리코 타르노보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작은 도시라서 지난 100일을 되돌아보기에 더 없이 좋은 여행지이다.
여행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포스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많은 고민 끝에 꽤 오랜시간 준비를 해서 여행을 출발했다.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이 이번 장기여행을 앞두고 여행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기간에는 어서 가고 싶은 마음에 항상 설레임이 가득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라다가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출발하기까지 한달 남짓의 기간에는 여행 준비와 신변 정리로 정신이 없어서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을 느낄 여유가 없었었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땅에 도착하여 며칠 지나자 그제서야 여행이 실감이 났다. 더 이상 익숙한 것들은 주위에 없었고 매일 매일이 새로운 것들에 대한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었고 오늘같은 내일도 기대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낯선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여름휴가와 같은 짧은 여행이 아니라 장기 여행이다 보니 여행 자체가 일상이 되었기에 점점 새로운 것에 대한 감정이 둔해져갔다.
여행이 일상이 된다는 것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것, 늘 새로운 잠자리와 먹을 곳을 찾아야 한다는 것, 매일 저녁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일이 습관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일상에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행 계획을 세울 때면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아무런 일정이 없는 휴일을 만들기도 하고, 한 일주일 정도 푹 쉬기 위한 휴가도 몇 차례 가졌었다. 여행 중에 휴가라는 말이 우습지만 장기 여행자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여행을 출발하고 한 달이 조금 넘어서면서부터 지치기 시작하면서 힘들었다. 비교적 여유로운 일정의 여행임에도 짐을 싸고 풀면서 이동하는 일에 몸이 지쳐갔다. 사실 몸이 힘든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몸의 피로는 쉬면 금새 회복이 되었지만 문제는 마음의 피로였다. 마음의 피로는 이상하게도 쉬면 쉴 수록 더 쌓여갔다. 온몸이 파김치가 되도록 바쁘게 돌아다녔던 날에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고,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숙소에서 쉬는 날에는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왜 여기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을까?’, ‘지금 이러고 있는게 잘하고 있는 것일까?’. ‘여행이 끝나고 나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등의 생각에 그토록 고대했던 여행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쉬면 불안한’ 한국 사회의 그늘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불편한 마음의 짐은 여행을 출발한지 100일이 지난 지금에서야 거의 내려놓을 수 있었지만, 아직도 가끔씩 마음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곤 한다.
아직 출발 전에 계획한 일정의 반에 반도 못한 시점이다. 그동안 내가 여행한 지역마다 이상하게도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네팔은 내가 떠난지 열흘만에 대지진이 일어났고, 중동 지역을 지날 때는 한국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이 유행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사를 물어왔고, 이집트는 떠나고 얼마 후에 폭탄 테러가 터키에서 반중 시위 중에 한국인 관광객이 공격을 당하기도 해서 또 다시 지인들의 걱정어린 연락을 받게 되었다. 원래 터키 다음 일정으로 가려고 했었던 그리스는 국가부도의 위기이니... 앞으로도 남은 여행지가 많은데 이런 일이 계속 이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집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겠지만 여행중에는 가장 중요한 게 건강이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100일 동안 흔한 감기나 배탈 한번 없이 건강하게 여행을 했다. 나와 아내의 몸에 스스로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앞으로 항상 건강하고 안전하게 여행이 이어지길 바란다.
처음 계획할 때부터 뭔가를 얻으려고 떠난 여행은 아니지만, 남은 여행 중에 세상을 멋지게 즐기는 법 하나만이라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행 100일을 자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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