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낯선 천장을 보며 잠에서 깨는 일, 벌써 200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침이면 멍하니 앉아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200일 전, 포근한 집을 떠나고부터 매일 바뀌는 잠자리와 입에 거친 음식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일상과 선택의 결과를 끊임없이 마주치는 일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이런 생활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버겁다. 게다가 두달간 캠핑 생활을 하면서 텐트를 치고 철수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왜 절대 다수의 사람이 정착생활을 하고 있는지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계속 길위에 있는 이유는 불편하고 힘든 여정 중에도 예상치 못하게 다가오는 즐거움과 순간 순간 느껴지는 만족감 때문인 것 같다. 짧은 일정의 여행을 할 때는 모든 동선과 방문지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해서 떠났기에 공부한 것을 시험보듯이 미션 수행하는 기분으로 돌아다녔다. 그러다보니 예상했던 풍경과 경험을 하게 되었고 여행을 준비할 때 기대했던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었다. 하지만 큰 틀만 잡고 세부적인 계획은 현지에서 부딛히면서 하는 장기 여행을 하다보니 매 순간이 예상 밖의 일들이었고 그랬기에 기쁨과 감동도 컸고, 슬픔과 고통도 컸다. 사전 정보 없이 우연히 만난 유적지와 자연경관은 입이 딱 벌어지는 놀라움을 주었고, 예상치 못했던 사고와 정보 부족으로 인한 헛고생들은 좌절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그런 롤러코스터 같은 일상이 장기 여행의 묘미이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여행 중에는 반복적인 일상을 보낼 때보다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여행 중에는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일상다반사였기에 가장 기본적인 먹는 것과 자는 것까지 매번 도전에 부딛히다 보니 생각을 멈출 틈이 없었다. 그러다가 좀 한가해질 때면 마음속에 불안감이 스물스물 피어올라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떠난 여행길이었기에 ‘지금 잘 하고 있는건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따위의 생각들이 심사를 어지럽혔다. 이런 저런 생각들로 꼬리를 물다보면 어느샌가 ‘나는 누구인가?’의 단계에 이르게 되어 정신이 멍해진다.
이런 저런 생각들로, 현실과 이상의 차이로 마음이 불편하던 때에 귀인을 만났다. 프랑스 앙시의 캠핑장에서 만난 몽블랑 도인님. 3일을 같이 지내면서도 성함도 모르는, 몽블랑에서 트래킹을 하고 내려오셨다는 수염이 가득한 그 분을 우리는 몽블랑 도인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치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속 연금술사처럼 그분은 자아 실현이 아닌 자아를 깨닫는 일에 대한 많은 조언을 해 주셨고, 마음속에 어지럽게 떠돌던 생각들이 많이 가라앉았다. 여행 중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의 범주 밖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씩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생기는 듯 하다. 여행이 단지 TV와 책 속에서 본 관광 명소를 재확인하는 것과 다른 것은 이렇게 사람과의 만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제 보름정도 지나면 크루즈를 타고 스페인을 떠나는 것으로 유럽 여행을 마치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숨가쁘게 달려온 일정을 정리하면서 이번 여행의 1부를 마무리하는 기분이 든다. 보름이 넘는 일정의 크루즈 여행을 통해 잠시 휴식을 가지고 미국에 도착하면 중, 남미를 가로지르는 제2부가 시작될 것이다. 유럽 여행의 일상이 익숙해져서 인지, 마치 여행 출발 전에 한국에서 느꼈던 것처럼 남미 여행이 기대되고 설레인다. 이미 여행 중이면서 다음 일정을 기대하며 계획을 세우며 설레이는 일이 참 낯설다.
지난 200일 동안의 떠돌이 생활에도 나와 아내의 몸이 건강하게 잘 버텨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아직 젊어서 였는지 내가 내 몸을 챙긴다는 것이 어떤것인지 잘 모르고 살았었는데, 여행 중에는 내 몸과 대화를 하면서 충분한 수면과 영양분을 제공하고 잘 다독이면서 챙김의 의미를 깨닫고 있다. 남은 여행 동안에도 자~알 챙겨야겠다.
어쨌든 돌이켜 보면 위험했을 순간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잘 이어져 온 것이 대견하고 앞으로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이 여행을 즐기고 싶다.
< 200일을 기념하며 타파스와 함께 맥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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