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를 여행한 사람들에게 가장 극적인 장소가 어디였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기리야(Sigiriya)를 손꼽을만큼 시기리야는 스리랑카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최고의 명소이다. 시기리야는 담불라에서 약 10km 정도 떨어져 있기에 담불라에 머물면서 로컬버스로 다녀왔다. 거대한 화강암 바위산을 올라야 하므로 가능하면 날이 더워지기 전에 돌아보기 위해 아침 일찍 나왔지만... 역시나 가득찰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출발한 버스는 느릿느릿 달리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태워가느라 숙소를 떠난지 두 시간만에 시기리야에 도착했다. 이미 날은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졌다.
스리랑카는 대체로 유적지 입장료가 비싼 편이다. 스리랑카의 상징과도 같은 시기리야는 오죽하겠는가. 바위산 위의 폐허를 방문하는 입장료가 무려 30달러라니 매표소 앞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한 여행자들의 입이 궁시렁궁시렁 하고있다. 30달러의 가치를 하는지 두고 보자며 시기리야로 들어서 숲을 지나는 순간, 눈앞에 사진과 영상으로 수없이 봤었던 거대한 바위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스리랑카를 여행하며 시기리야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수없이 머릿속에 그려왔던 풍경이 실제 눈앞에 펼쳐지니 꿈에 그리던 님을 만난 듯 감격스러웠다.
< 입구에서 바라본 시기리야 록 >
시기리야 록에 가까이 다가갈 수록 엄청난 규모가 실감이 났다. 외부의 침입을 막기위한 요새로 만들어졌던 곳인만큼 해자와 좁은 통로와 가파른 계단이 이어져 여행자의 침입(?)도 꽤 힘들었다. 그렇게 바위산 바로 밑까지 도달하니 이번에 수직으로 오르는 나선형 계단을 만났다. 아! 바로 그 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아찔한 계단을 빙글빙글 돌며 올라가면 아찔한 미인도를 만날 수 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보는 이의 맘을 설레이게 하시는 그녀들은 원래는 500여분이 계셨다는데 시리리야가 함락된 이후에 수도원으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수행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없애버려서 지금은 10여명만 남아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 남은 10여명으로도 이럴게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 건너 만나뵈러 오는데, 500명이 다 계셨더라면... 괜히 몹시 흐뭇해진다. 장난스럽게 쓰긴 했지만 실제로 바위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는 정말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게다가 아찔한 높이의 바위벽에 그려져 있어서 그런지 천상의 글래머 여인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 지금 만나러 갑니다.>
< 시기리야의 아찔한 그녀들 >
풍만한 신비로운 그녀들과 헤어지고 미러월이라 불리는 시기리야 옆면을 따라 오르면 드디어 시기리야 요새의 입구가 나타난다. 여태까지 힘들게 올라온 길이 무색할 만큼 눈앞에는 새로운 도전과제가 주어진다. 거대한 사자의 발 사이로 시기리야 성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다. 지금은 사자의 발만 남아있지만 원래는 사자의 머리까지 있어서 사자의 입안으로 들어가는 형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든 스테이지 클리어를 위한 마지막 던전을 들어가는 기분으로 사자의 발 사이로 들어가서 시기리야 록의 벽을 따라 박혀있는 아슬아슬한 계단을 기어 올랐다.
< 시기리야 궁의 진짜 입구 >
< 사자의 입으로 들어가는 던전 입구 >
< 녹이 많이 슨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거야. 튼튼할 거라 믿어. >
높이 370미터의 거대한 바위 위에는 올라와서 보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공간과 거대한 유적지가 있다. 이 유적지는 먼 옛날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카샤파 1세가 천혜의 요새위에 세운 왕궁이다. 정글 가운데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산 위에 힘들게 왕궁을 세운 왕의 이야기는 시기리야의 미인도 만큼이나 유명하다. 첩의 아들이었던 카샤파왕은 아버지를 죽이고 왕권을 찬탈하지만 남인도로 망명갔었던 동생이 처들어올까봐 시기리야에 성을 짓고 두려움에 떨며 지냈다고 한다. 11년 동안 왕궁을 짓고 수도를 이전하고 나서 겨우 6개월 정도 머물다가 동생 목갈리나가 처들어오자 결국은 패배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니 참 허무하기도 하다.
< 바위산 위 까지 물이 공급되고 자급자족이 가능했다는 왕궁터 >
< 왕좌!! 그런데 'Not for sitting' 이라고 써있네 >
< 카샤파왕의 시선에서 본 전경 >
시기리야의 궁전터를 돌다가 매끈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왕좌를 발견했다. 엄청난 바위산 위에 화려한 왕궁을 짓고 왕좌에 앉아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던 왕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왕국을 내려다보며 뿌듯함과 책임감을 느꼈을까? 아님 아버지를 죽인 죄책감과 언제 동생이 군대를 끌고 쳐들어올까 두려워했을까?
한편의 막장 드라마 같은 카샤파왕의 이야기는 그저 먼 역사 속의 이야기 만은 아닌 것 같다. 잘 찾아보면 주변에도 정당하지 못한 권력으로 자신만의 시기리야에 앉은 카샤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카샤파왕의 결말을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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