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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요르단] 암만 : 암만 오래된

 

스리랑카를 떠나 요르단의 암만(Amman) 퀸알리아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했다. 여느 공항버스와 다를바 없었지만, 우리는 뭔가 어색하고 기분이 묘했다. 옆사람과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요란한 스리랑카의 버스에 익숙해져 있다가 조용하고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를 타니 마치 신세계의 첨단 교통수단을 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또 한번의 타임슬립!! 발전 정도가 차이가 나는 국가를 넘나드는 여행을 하다 보면 장소의 이동뿐만 아니라 시간의 이동도 같이 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공항버스는 암만 북부터미널에 도착해서 누가 봐도 배낭여행자의 모습인 우리는 통과의례로 바가지 요금을 내고 숙소가 있는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아무리 흥정을 잘 해보려고 해도 커다란 배낭을 등에 메고 처음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순간에는 적정한 요금이 얼마인지 감도 없고 몸이 힘들다 보니 적당히 더 주고 얼른 가자는 마음에 바가지 요금을 쓰게 된다.

 

오래된 도시답게 다운타운의 대부분의 호텔들은 낡고 좁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검색하고 후기도 꼼꼼하게 보고 예약한 숙소였지만 암만 다운타운 숙소의 평균 수준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항상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풀면 가장 먼저하는 일이 빈 손의 가벼운 차림으로 거리로 나가 주변을 돌면서 길을 익히는 습관이 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돌아와 지도를 보면 대략적인 방향감과 거리감이 생기는데, 암만은 암만해도 쉽지가 않았다. 암만 다운타운은 시타델이 있는 언덕 아래로 주택, 재래시장, 모스크가 미로처럼 얽혀있고 대부분의 길이 직선이 아닌 언덕을 따라 등고선 형태의 곡선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방향을 잃기가 쉬웠다. 그래서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고 싶었다.

 

< 암만 시타델의 헤라클레스 신전 >

 

암만 다운타운은 여러 언덕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 암만에서 가장 높다는 시타델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암만 시타델은 그 역사가 청동기시대 유적부터 로마, 비잔틴, 우마이야 왕조에 이르는 수천년동안 이어져 왔다. 엄청난 역사를 가진 장소에 비해 유적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749년에 있었다는 지진으로 인해 대부분 무너지고, 그나마 건물의 이루던 잔해는 역사적 유물에 대한 가치의식이 부족하던 시절에 동네 주민들의 건축자재로 사용되어 지금은 황량한 건물터만 남아 있다. 어느 정도 골격이라도 남아있어야 상상력을 동원해서라도 그 시절의 영화를 느껴볼텐데, 너무 남아있는 것이 없어서 사실 큰 감흥이 없었다. 다만 시타델이 있는 언덕에서 사방으로 암만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탁 트인 전망 덕분에 여행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 시타델에서 내려다 본 암만, 베이지색의 도시 >

 

시타델 언덕에서 다운타운으로 내려오는 길에 로마광장이 내려다 보인다. 로마광장은 암만 다운타운의 상징과 같은 곳으로 넓은 광장이 있어서 복잡한 구시가지에서 잠시나마 숨을 트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여행자 뿐아니라 현지 사람들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연인과 데이트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 암만 다운타운의 로마 광장 >

 

< 암만의 거리에서 '장그래'들의 성과를 느껴보자 >

 

여행에 관심이 많아서 여행서, 다큐멘터리 등을 많이 찾아봤었지만 암만은 그저 페트라와 사해를 가기위해 거치는 도시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윤태호 작가의 ‘미생’이라는 웹툰과 드라마의 배경으로 보게 되면서 관심을 가졌는데, 직접 와서 보니 중고차 사업의 성공지라는 작품 속의 설정이 허구가 아니었다. 암만의 거리에는 온통 현대, 기아와 같은 한국산 차량으로 가득했다. 물론 최신 모델도 많이 보이지만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점점 보기 어려워지는 오래된 모델의 한국 차량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쓸만한 데도 불구하고 새차로 바꾸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녀석들이 이렇게 먼 타국에서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 약간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의 거리에서는 오래된 차량이나 소형차를 많이 볼 수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의 거리에서는 젊은(!) 중형차가 가장 눈에 많이 띈다. 정말 차가 낡아서 불편해서 일까? 최신 제품에 대한 욕구? 아님 사회적 위치에 따른 타인의 의식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