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리야를 올라갔다 온 후로 며칠동안이나마 정들었던 담불라 숙소를 떠나 캔디 외곽의 조용하고 고풍스러운 숙소에서 쉬면서 스리랑카를 떠날 준비를 했다. 스리랑카 국제공항인 콜롬보 반다라이나크 공항은 콜롬보에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네곰보(Negombo)에서 훨씬 가깝다.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이 출국 전에 콜롬보가 아닌 네곰보에 머물다가 공항으로 향한다. 나 역시 네곰보에 머물다가 바로 출국할 생각으로 캔디에서 네곰보로 이동했다.
캔디에서 네곰보로 가는 로컬버스를 타려면 캔디 기차역 뒷편에 있는 Good sheds 터미널로 가야 한다. Good sheds 터미널은 네곰보로 가는 버스뿐아니라 스리랑카 대부분의 지역으로 가는 버스가 모두 모이는 곳이다. 그래서 항상 버스와 사람들이 어지럽게 엉켜있고 복잡하고 시끄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서 잠시만 있어도 영혼이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 혼돈의 캔디 Good sheds 터미널. 네곰보행 버스는 어디에... >
혼돈의 터미널에서 간신히 정신을 챙겨서 네곰보행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출발 스케줄 따위는 없다. 그냥 빈자리없이 가득차면 출발시간 인거다. 30분을 넘게 기다려도 버스에는 아직 빈자리가 남아있는데, 세상에 버스가 출발을 하는 것이었다. 아싸~~ 아내와 나는 신나서 넓게 앉아서 가자는 심산으로 버스 안의 복도를 가운데 두고 두명씩 앉는 좌측열에는 아내가, 3명씩 앉는 우측열에는 내가 앉아서 다리를 쩍벌리고 편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불행의 시작이었으니...
< 달리는 버스도 잡아 탈 수 있는 익사이팅 스리랑카 >
우리가 스리랑카 로컬버스를, 열성적인 차장을 과소평가 했었다. 버스가 출발한지 10여분 동안 달리는 버스의 뒷문으로 한사람 두사람 올라타다니, 어느 시장 앞에 섰을 때는 버스에 발딛을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가득찼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 '그분'이 앉으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죽가방과 2인분의 엉덩이를 들고 내 옆에 철퍼덕하고 자리를 잡는 순간, 나의 몸이 버스 복도로 밀리면서 오른쪽 팔과 다리에는 그 분의 뜨끈한 체온과 끈적한 땀이 느껴졌다.
보통은 버스를 탈 때, 항상 나보다 체구가 작은 아내와 나란히 앉았기에 의자가 좀 좁아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는데, 2인분의 그분은 커다란 엉덩이살과 끈끈한 땀, 복실복실한 털로 나를 의자 밖으로 밀어냈다. 잠시 어깨를 들썩이는 사이에 등받이마저 뺐겼다. 이제 등도 못 붙인채로 의자의 절반에 간신히 걸터앉아서 신나는 로큰롤 로컬버스 체험을 하게 되었다.
< 3시간의 조용한 전쟁 중, 앗! 밀리고 있다. >
캔디에서 네곰보까지는 약 3시간정도 걸리는데 계속해서 불편하게 갈 수 없었다. 잃어버린 나의 영토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옆자리 그분과 밀고 당기는 전쟁을 시작했다.
공격 #1 : '에헴' 하는 기침과 함께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정도의 가벼운 공격으로 육중한 그분을 밀어낼 수 있을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공격 #2 : 그분이 잠시 가방에 뭔가를 꺼내기 위해 등을 떼는 순간, 잽싸게 어깨를 등받이에 붙이고 공간을 확보했다.
이제 그분은 나의 어깨에 걸려 등받이에 등을 붙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등받이 탈환의 기쁨도 잠시. 버스가 갑자기 우회전을 했다.
수비 #1 : 버스가 우회전하는 순간 몸이 복도쪽으로 쏠리는 틈을 타서 그분이 다시 등받이를 접수했다.
작은 성공에 취해 잠시 방심한 사이에 역습을 당했다. 게다가 팔에 난 복실복실한 털로 콤보 공격이 들어왔다. 젠장.
저멀리 좌회전 주의 표지판이 보인다. 잠시후면 나에게 공격 찬스가 온다는 말이다. 헤헷
공격 #3 : 버스 좌회전과 동시에 온 체중을 실어서 그분을 밀어본다.
야호 밀린다. 드디어 왼쪽 엉덩이의 일부도 의자 위로 올라왔다. 그런데 너무 티가 나게 밀었나보다.
수비 #2 : 그분이 날 한번 쓱 쳐다보다니, 코끼리 다리를 좌우로 벌린다.
엉덩이는 의자에 안착했지만 다리가 밀렸다. 질 수 없어서 끝까지 버텼다. 땀이 난다.
그렇게 3시간 동안 아무말도 없이 신경전을 벌이면서 버스가 급선회 할 때마다, 체중을 실어 좌로 우로 밀어서 공격과 수비를 하며 자리전쟁을 했다. 이쯤되면 그분도 분명히 나와 같은 생각이었음을 확신한다.
치열한 전투를 벌인 로컬버스 안의 3시간이 훌쩍 지나 버스는 드디어 네곰보에 도착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투를 마치고 버스에서 내린 나와 그분은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고는 각자 갈 길을 떠났다.
'하얗게 불태웠어. 멋진 한 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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