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해변의 뜨겁고
습한 날씨에 지쳐갈 때 쯤에 웰리가마를 떠나 스리랑카
고원지대인 엘라(Ella)로 떠났다.
더위를 피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짐을 싸들고 로컬버스를 탔다.
운 좋게도 숙소를 문을 나서자마자
버스가 와서 타고 마타라로 갔고,
마타라에 도착해서 곧바로 엘라를
향하는 버스로 갈아탈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하게도 운수가 좋은 날이
있다. 그런데 왜 먹지를 못하니.
남부 거점도시 마타라(Matara)에서 엘라(Ella)까지는 버스로 약 4시간 거리인데, 그 4시간 동안 날씨는 드라마틱하게 달라진다. 버스는 마타라를 출발하여 탕갈래(Tangalle)를 거쳐 해변을 따라 달리다가 함반토타(Hambantota)를 기점으로 내륙으로 방향을 튼다. 이때부터 창문을 활짝 열고 달리는 로컬버스의 뜨겁고 습한 공기는 점점 건조해지고 몸에 땀이 마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다가, 버스가 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하면서 공기는 점점 시원해진다. 이윽고 해발 1040미터에 위치한 엘라에 도착하니 햇빛은 뜨겁게 내리쬐지만 시원하고 건조한 바람 덕분에 쾌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엘라는 하퓨탈레, 누와라엘리야와 함께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일명 ‘Tea Country’ 로 유명한 마을이다. 걸어서 10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작은 거리에는 숙소와 식당이 줄지어 있고, 주변에는 차밭과 엘라의 상징인 Ella Rock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담한 동네이다. 어느 마을에나 자랑거리가 있듯이 엘라에도 여행자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몇몇 명소가 있다.
먼저, 엘라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거대한 봉우리 Ella Rock이 있다. 수직으로 솟아 있는 엄청난 바위산에 아름드리 침엽수가 솟아 있고 뒤로는 웅장한 폭포가 있어서 스리랑카가 아닌 알프스라고 해도 믿길 풍경이지만, 역시 사진으로 그 느낌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 스리랑카의 알프스 Ella Rock >
마을 중심에서 30분 정도 걸어서 짙푸른 차밭을 지나면 종모양의 봉우리가 있는데 그곳이 Little Adam’s Peak이다. 진짜 Adam’s Peak는 누와라엘리야에 있지만 엘라에도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아름다운 산등성이가 있는데, 가파른 언덕을 10여분 올라가면 건너편으로 Ella Rock이 한 눈에 보이고 멀리로 해변으로 향하는 평지까지 탁트인 장관이 펼져진다. 이미 1000미터 이상의 고지에서 출발하는 등산이라서 작은 노력으로도 고산을 정복한 성취감을 안겨준다.
< 눈이 시원했던 Little Adam's Peak >
그 밖에도 하루에 서너번 기차가 지나가는 아름다운 아치형 다리인 Nine Arch Bridge와 Ella Rock의 뒷편으로 쏟아져 내리는 거대한 Rawana 폭포, 으시시한 Dowa 석굴 사원까지 엘라 주변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올 만한 아름다운 장소가 많아서 엘라에 머무는 8일 동안 하루에 한 곳씩 골라 방문하는 재미로 지냈다.
< 기차가 지나가기를 한참을 기다렸던 Nine Arch Bridge >
< 장쾌한 물줄기의 Rawana Fall >
사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에는 엘라는 머무를 계획조차 없었으나 원래
가려고 했던 하퓨탈레에 마땅한 숙소가 없어서 대안으로
엘라에 2박을
예약하면서 오게 되었다.
그런데 예상외의 매력에 빠져 엘라에서만
7박
8일동안
지내게 되었으니...
그 이유는 우연히 예약하게 된 홈스테이
때문이었다.
기대치가 거의 없었던 여행지였기에
그냥 저렴한 숙소를 찾다가 생긴지 얼마되지 않아서
이용자 후기 조차 없는 홈스테이를 선택했다.
버스에서 내려 커다란 배낭을 앞 뒤로
메고서 숙소에 도착했을 때,
마치 오랫동안 객지에 나가있던 가족이
돌아오는 날처럼 노부부와 아들 둘이 정원 테라스에서 일어나 기쁘게 버선발로 반겨주었다.
이전에 어떤 숙소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한 환영을 받고 차 대접을 받으면서 즉흥적으로
5일을
더 머물고 싶다고 말을 했고,
그렇게 7박
8일
동안 ‘Senasuma
Homestay’의 가족이 되었다.
< 일주일간 우리집이었던 Senasuma Homestay >
Guest House가 아닌 홈스테이였기에 평범한 스리랑카 가족이 사는 집의 방한칸에 머물면서 그들과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같이 식사를 하고, 낮에 빨래를 널며 수다를 떨고, 나른한 오후에 테라스에서 차를 나누면서 잠시나마 집에 있는 듯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은행원으로 35년간 일하셨고, 아주머니는 경찰서 행정직으로 정년을 하시고 지난해 말부터 소일거리로 홈스테이를 운영하기시고 계셨다. 마침 스리랑카 불교에 큰 명절(부처님 오신날)이라 인근에서 사업을 하는 큰아들, 시집 간 딸과 손자들, 콜롬보에서 대학을 다니는 막내아들까지 모두 모여서 불교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우리도 덩달아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으며 명절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 스리랑카 중산층 가정을 느낄 수 있었던 Homestay >
엘라에 머무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여행자임을 잊고 지낼 수 있었다.
매일 오전에는 맑고 오후에는 흐리고
비가오는 날씨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오늘의
명소’를 방문하고 점심 식사 후에 집으로 돌아와
오후에는 아내와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마치 미션을 수행하듯 바쁘게 뭔가를
찾아다가 엘라에서 잠시 쉼표를 찍을 수 있어서 몸이
쉴 수 있었고,
서로 짧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면서도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홈스테이 가족들이
있어서 마음의 휴식도 얻을 수 있었던 따뜻하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남은 일정 중에 힘들고 지칠때마다 Ella의 '집'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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