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에서 밤 11시에 바르셀로나(Barcelona)로 떠나는 야간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갑작스런 메일을 받게 되었다. 에어비앤비에서 호스트의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인해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통보였다. 한시간 뒤면 야간버스를 타고 내일 새벽에 바르셀로나 도착인데! 갑자기 숙소 예약이 취소되었다고 하면 어찌하란 말인가! 게다가 바르셀로나는 숙박비가 비싼 편이라 2주 전부터 심사숙고해서 고른 숙소였는데, 야간 버스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찾아다녀야 하는 건가하는 생각에 심란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떠나기 전에 기존의 호스트였던 Gerson에게 갑작스러운 예약취소에 대한 변명이라도 들어보기위해서 우리가 도착할 시간에 버스터미널로 나오기를 요청했다. 불안한 마음에 흔들리는 버스에서 선잠을 자고 새벽 6시 반쯤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다행히 Gerson이 나와서 미안한 얼굴을 하고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에어비엔비로 운영하던 숙소가 이웃주민과 불화가 생겨서 잠시 손님을 받을 수 없는 사정이라고 했다. 에어비엔비라는 것이 본래 숙박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호텔이 아닌 일반 가정집에 머무는 것이다 보니 호스트의 사정에 따라 어찌될지 모른다는 위험이 항상 있었는데 그게 딱 이번 케이스였다. 이런 경우 에어비엔비 측에서 숙소를 섭외해서 비슷한 수준의 숙소 리스트를 보내주고 예약을 도와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과 숙박비 차액은 에어비앤비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약간의 불편함만 감수한다면 사실 큰 문제는 없다. 일단 Gerson의 집으로 가서 잠시 쉬다가 에어비앤비 측 담당자와 연락을 해서 다행히 먼저 예약했던 숙소보다 훨씬 좋은 조건의 숙소가 결정되었다. 새옹지마라고 해야 하나?
늦잠의 여유를 즐기다가 얼떨결에 우리를 맞이한 호스트는 Artur와 Alexandra라는 젊은 스페인 친구들이었다. 건축학과 석사과정 중이라는 Artur의 집은 전세계의 건축학도가 우러러보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바로 앞에 있었다. 그 덕분에 이 곳에 9일간 머무는 동안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일출부터 야경까지, 맑은 날과 비오는 풍경까지 원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인테리어 사업을 창업 중이라는 그들은 집 곳곳이 굉장히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고, 항상 게스트를 존중해 주어서 마치 내집처럼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게 바르셀로나가 내게 너무 완벽했던 첫번째 이유가 되었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야경 >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를 빼고 얘기할 수 있을까? 90여년 전에 세상을 떠난 가우디가 여전히 바르셀로나를 먹여살린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바르셀로나의 최고 명소는 가우디의 건축물들이다.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하기 힘든 놀라운 그의 작품의 절정은 사그라다 파밀리아(La Sagrada Familia) 대성당이다. 가우디가 죽기전에 40여년을 매달렸었다는 대공사는 90여년이 지난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다. 15년만에 다시 찾은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내가 예전에 봤던 이후로 굉장히 많은 부분이 완성되어 있었다. 2000년 당시에는 내부 예배당은 천장도 없이 외벽만 있었고 성당의 남쪽면인 고난 파사트 쪽에는 입구만 있었고 지금과 같은 종탑이 없었다. 15년 사이에 이제는 대성당의 면모를 보이게 되었으니, 그들이 목표로 삼고있는 2026년에는 완성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첫번째 방문 때는 그저 상상만 했었던 예배당이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감탄! 감동!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수없이 많은 성당들을 봐왔었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내부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자연을 모방한 놀라운 건축양식과 거대한 규모도 놀랍지만, 가장 나를 감동시켰던 것은 아름다운 내부를 비추는 붉은 빛의 스텐인드 글라스 였다. 오색의 빛이 채우는 신비로운 공간은 밀려드는 관광객 속에서도 마치 나 혼자 천상의 세계에 떠있는 듯한 황홀한 느낌을 주었다. 내겐 너무 완벽했던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내부, 사진으로는 현장의 신비로움을 전하기 어렵네 >
< 파도 사이로 미역이 넘실거리는 듯한 카사 밀라의 외관 >
< 동화 속 과자의 집이 생각나는 구엘 공원 건물 >
스페인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에도 몇몇 명소에 일요일 무료 관람의 기회가 있었다. 매달 첫째 일요일만 무료라는 카탈루냐 미술관과 바르셀로나의 전경을 볼 수 있다는 성에 오르기 위해 일요일 오후에 도시락을 챙겨서 몬주익 언덕을 찾아갔다. 마법의 분수쇼가 펼쳐지는 에스파냐 광장에서 150번 시내버스를 타면 올림픽 공원과 후안 미로 미술관 등을 거쳐서 몬주익 성에 도착할 수 있다. 마법의 분수에 대해 잠깐 얘기하자면, 15년전 바르셀로나에 왔을 때에 분수쇼를 보고 그 환상적인 분위기와 규모에 받은 감동을 떠올리며 분수쇼 시작 한시간 전부터 좋은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하지만 15년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감성이 무뎌진 것인지 아님 얼마전에 본 두바이 분수쇼의 인상이 너무 강렬했었던 것인지 예전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같은 여행지를 긴 시간차를 두고 다시 오게 되면 예전에 미쳐 놓쳤던 부분을 확인하면서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이처럼 희미하게나마 아름다웠던 기억이 냉혹한 현실에 깨지는 경우도 있다.
< 몬주익 마법의 분수쇼 >
다시 몬주익 언덕으로 얘기로 돌아가서, 버스의 종점인 몬주익 성에 오르면 바르셀로나 시내 전경과 함께 지중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단순히 도시를 내려다 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지도보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실제로 지도의 모습를 볼 수 있는 전망대는 가장 흥미있는 장소이기에 여행 중에 대도시를 방문하면 대성당 종탑이나 타워, 전망대가 보이면 꼭 올라가본다. 많은 도시의 전경을 봐왔지만 바르셀로나의 전망은 단연 최고였다. 군데군데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투우장, 대성당 같은 랜드마크가 보이는 격자형으로 깔끔하게 짜여진 도시와 새파란 지중해의 수평선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몬주익 성은 최고의 전망대였다.
몬주익 성에서 다시 까탈로냐 미술관을 거쳐서 다시 에스파냐 광장으로 오는 길은 몬주익 언덕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걸어서 내려왔다. 92년도 올림픽이 있었던 몬주익 언덕은 거대한 공원과 같은 곳으로 곳곳에 체육시설과 미술관이 있고 탁트인 전망의 피크닉 공간이 많아서 일광욕을 즐기며 소풍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유럽의 대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이런 공간들이 정말 부러웠다. 런던의 하이드 파크나 파리의 뤽상부르크 공원 같은 도심 공원도 훌륭하지만 바르셀로나처럼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을 가지면서 넓게 펼쳐진 공원은 없었다. 이 곳에서 주말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몹시 부러웠고 거기서부터 바르셀로나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 까탈루냐 미술관 옥상에서 내려다 본 에스파냐 광장과 시내 전경 >
< 가우디의 주택단지 프로젝트였던 구엘 공원 >
여행을 다니면서 머물었던 곳에 대한 느낌을 되새겨보면 나의 성향은 대도시보다는 중소도시에 더 매력을 느껴왔다. 볼거리도 많고 쇼핑몰이 가득한 화려한 대도시에 가면 왠지 마음이 갑갑함을 느꼈고 오히려 한적하고 약간은 시대에 뒤처지는 듯한 느낌의 작은 도시에서 매력을 느꼈었다. 사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이다. 하지만 격자형으로 잘 정비된 도심과 촘촘하게 짜여진 대중교통 시스템, 넓은 보행로 덕분에 도심지에서도 쾌적함을 느낄 수 있었고 어디서나 쉽게 접근이 가능한 구엘 공원과 몬주익 공원, 시우타데야 공원은 대도시에서도 평화로움을 주었다. 게다가 도심에서 조금만 걸어면 눈부신 지중해가 펼쳐진 바르셀로네타 해변과 마리나가 있다는 것은 바르셀로나를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굳이 가우디가 아니더라도 바르셀로나는 이미 완벽했다.
< 바르셀로네타 해변길, 포르트 벨까지 이어지는 멋진 보행로 >
여행을 다니다보면 눌러앉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이번엔 내게 너무 완벽한 도시 바르셀로나가 마음에 들어왔다. 여행 중에 꽤 긴시간을 할애해서 9일을 머물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고, 오랫동안 기대했던 크루즈를 타고 떠나면서도 즐겁지가 않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에 대성당이 완공될 쯤에 다시 와서 그때는 좀 더 오래 머물어보고 싶다.
*** 바르셀로나 여행 Tips ***
Tip 1. 바르셀로나 여행의 필수 코스인 가우디의 건축물을 입장하려면 사전 예매는 필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경우 동시 입장 시간과 종탑 엘리베이터 탑승 시간을 예약해야 한다. 좋은 시간대는 1~2주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으니 참고하자. 그 밖에도 구엘 공원,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등도 인터넷 예약을 하면 약간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Tip 2. 구엘 공원은 항상 사람들도 붐빈다. 중앙 광장과 도마뱀 분수가 예쁘게 나온 사진을 찍고 싶다면 아침 일찍 첫번째 입장 시간대를 노리자. 구엘 공원은 지하철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버스를 이용하면 공원 동쪽 입구에 내릴 수 있다. (24번, 92번) 공원 근처에 마땅히 식사할 곳을 찾기 어려우니 도시락을 준비해서 공원 안의 피크닉 구역에서 멋진 경치와 함께 식사는 것을 추천한다.
Tip 3. 바르셀로나도 무료 입장의 찬스가 있다. 대성당은 오전 시간과 오후 늦은 시간에 가면 무료 입장이 가능하고, 피카소 미술관은 일요일 15시부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몬주익 성은 일요일 오후 3시부터, 카탈루냐 미술관은 매월 첫번째 일요일에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Tip 4. 바르셀로나는 대중교통이 굉장히 편리하게 이어져 있다. T-10이라 불리는 10회 이용권을 이용하면 저렴한 가격에 버스와 지하철, 트램, 푸니쿨라를 이용할 수 있다. 한 장으로 여러명이서 사용이 가능하며 타임스탬프를 찍고 1시간 15분이내에 다른 교통수단으로 환승이 가능하다. (9.95 유로, 2015년 10월)
알짜 활용 예시) 지하철로 에스파냐 광장 도착 → 150번 버스로 환승 후 몬주익 성 이동 → 몬주익 성 관람 후 푸니쿨라 탑승 → 지하철 환승
Tip 5. 시내 전체를 조망하고 싶다면 몬주익 성이 있는 언덕 만한 곳이 없지만, 에스파냐 광장에 있는 아레나 쇼핑몰 옥상도 훌륭하다. 특히 밤에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멋진 야경도 볼 수 있다. 추가로 카탈루냐 미술관 옥상 전망대에 있는 커피점에서도 탁트인 전망을 느낄 수 있다.
Tip 6.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반드시 바르셀로네타 해변길을 걸어보자. 포르트 벨에서부터 해변을 따라 쌍둥이 빌딩이 있는 Ciutadella-villa Olimpica역까지 눈부신 해변과 쾌적하게 정리된 거리가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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