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코 타르노보(Veliko tarnovo)는 불가리아에 오기 전까지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생소한 도시였다. 마치 공룡의 이름과도 흡사한 도시 이름은 발음하기도 힘들고 사람들마다 타르노보, 투르노보, 따르노바 등으로 불러서 어느 것이 정확한 발음인지 조차 모르겠다. 그러나 이 생소한 이름의 도시가 불가리아를 여행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는다기에 직접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터키를 여행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버스 서비스에 길들어져서 플로브디프에서 벨리코 타르노보로 가는 비좁고 후덥지근한 미니버스에서의 3시간은 오랫만에 느끼는 고난의 이동이었다. 벨리코 타르노보 서부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만해도 그냥 흔한 소도시 분위기였다. 찜통 미니버스를 함께 타고온 불가리아 청년에게 손짓, 발짓으로 간신히 휴대폰을 빌려 예약한 숙소 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약속 시간보다 한참 뒤에 나타난 숙소 주인 할아버지의 밴을 타고 벨리코 타르노보 구시가지로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동화 속의 마을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다른 세상이 나타났다.
< 벨리코 타르노보 구시가지 전경 >
< 아셈 기념비, 벨리코 타르노보에서 시작되었다는 비잔틴 제국으로부터의 항거운동 800주년 기념비 >
굽이쳐 흐르는 강을 따라 절벽 위로 붉은 지붕의 주택들이 층층이 앉아있고 강 건너편에는 아름다운 석조 건물인 아트갤러리와 아센 기념비가 서있어서 마치 빨간 모자를 쓴 건물이 둥글게 둘러앉아 기념비와 갤러리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구시기가지 내부를 들어가보면 곳곳에 작은 수공예품을 만드는 공방과 미술품 갤러리, 기가 막힌 전망을 가진 카페와 레스토랑, 도시 구석구석에 재치있는 벽화까지 발길이 닿는 곳마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도시이다.
어딜봐도 눈이 즐거운 벨리코 타르노보지만 그 중에 최고는 구시가지 끝에 있는 차르베츠 성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강과 절벽으로 둘러쌓이 천혜의 요새에 세워진 차르베츠 성은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이후로 불가리아 제국의 수도였지만,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무너져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비록 대부분의 건물을 무너지고 지금은 성의 정상에 있는 성모승천교회만 남아있지만 여전히 차르베츠 성은 여전히 당시의 난공불락의 요새를 떠올리게 하는 위엄을 풍기고 있다.
< 제2 불가리아 제국의 중심이었던 차르베츠 성 >
< 차르베츠 성의 정상에 있는 성모승천교회 >
< 성모승천교회 내부에는 현대미술로 그려진 벽화와 장엄한 음악이 흐르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
< 차르베츠 성에서 내려다 본 벨리코 타르노보 >
벨리코 타르노보를 여행하면서, 아니 불가리아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느낄 수 없었던 묘한 시선들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자가 몰리는 관광명소나 버스터미널에서도 심지어는 시티투어에 참가해도 동양인을 보기 힘들었다. 물론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행객이 드문 골목이나 주택가를 지날때면 신기한 듯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중동 지역과 터키를 여행하는 내내 어딜가나 호객하는 사람들에게 ‘니하오~’라는 소리를 들어서 니하오 노이로제에 걸렸었는데, 여기서는 전혀 들을 수 없어서 거리를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대신에 넓은 보행자 거리를 걸을 때면 다들 나만 쳐다보는 것만 같은 연예인병에 걸려서 늘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다는...
7월이면 한참 여행 성수기인데도 이렇게 매력적인 여행지 불가리아에서 동양인 여행자를 보기 드문 것은 아마도 아직은 불가리아가 우리들에게 인기있는 여행지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대부분 배낭여행자들도 서유럽과 체코, 헝가리 정도의 동유럽을 선호하고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는 우리와 같은 장기여행자들이나 지나가는 여행지인 듯했다. 그래서인지 불가리아는 인터넷에서 여행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다. 어쩌며 인터넷 상에 정보가 적어서 불가리아를 찾는 한국인은 드문 것일지도 모르겠다. 닭이냐 달걀이냐?
언제부터인지 여행을 준비할 때면 인터넷 검색을 해서 다른 사람들이 다녀온 여행기를 토대로 여행 계획을 세우는 일이 흔해졌다. 그러다보니 A가 다녀와서 쓴 블로그를 보고 B가 같다와서 비슷한 후기를 남기고, C가 여행 준비를 위해 검색하면 A, B가 다녀온 여행기를 보고 다시 가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아마도 맛집 유행도 이런 메커니즘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만든 여행의 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고,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확인하는 뻔한 여행이 되버리는 듯해서 아쉽다. 물론 나도 인터넷 여행기 검색과 TripAdvisor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기는 하지만, 검증된 곳을 간다는 마음의 평화와 예상 밖을 즐거움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공존하기에 여행을 즐기기에 딱 적당한 수준만큼의 여행 정보만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작성하는 글에도 약간의 오글거리는 감상과 함께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하려고 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예상 밖의 즐거움을 찾으러 떠난 여행인데, '새로움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라 '계획 완수에 대한 안도감'을 느낀다면 너무 여행준비를 많이 한게 아닌가 뒤돌아봐야겠다. 적어도 벨리코 타르노보를 떠날 때는 'Mission Complete' 같은 기분이 아니라서 안심이다.
< 조용하고 아름다운 벨리코 타르노보에서 뜬금없이 록 페스티벌을 만났다. 심지어 바이크를 좋아하는 자유로운 형님들의 축제 >
< 남자라면 누구나 눈을 뗄 수 없는 엄청난 바이크들이 다 모였다. 행사 중에는 동시에 시동을 걸어 스로틀을 당겨 벨리코 타르노보 시내 전체에 천둥소리같은 바이크소리가 울렸다. >
*** 벨리코 타르노보 여행 Tips ***
Tip 1. 차르베츠 성에서 밤에 펼쳐지는 Light Show는 벨리코 타르노보 최고의 볼거리. 하지만 언제 시작하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성 매표소 직원도, 바로 앞 호텔이나 상점 스탭들도 오늘 저녁에 쇼가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한다. 이유는 정기적으로 쇼가 있는 것이 아니라 30명 이상이 단체 관광객이 신청을 해야만 하기에, 구시가지 입구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오늘 쇼가 있는지 미리 확인해보자.
Tip 2. 벨리코 타르노보에 도착했는데 넓은 평지에 있는 정류장에 내려준다면 구시가지에서 한참 떨어져있는 서부터미널이다. 당황하지 말고 110번이나 5번 시내버스를 타자. 정류장에 노선표가 상세히 나와있다.
Tip 3. 벨리코 타르노보 주변에도 아르바나시, 고브로프와 같은 아름다운 마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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