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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스페인] 톨레도 : 스페인을 압축한다면

 

스페인을 단 하루만 여행할 수 있다면 톨레도(Toledo)로 가라는 말을 들었었다. 톨레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톨레도 관광 담당 공무원이 만든 그럴 듯한 홍보 문구인 줄 알았다. 그러나 톨레도에 5일간 머물면서 느낀 것은 ‘스페인을 하루만 간다면 톨레도로 가라. 그러나 하루로는 부족하다.였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톨레도는 중세에서 시간이 멈춘듯한 분위기의 고풍스러운 도시였다.스페인을 가로질러 포르투갈까지 이어지는 타호강으로 둘러쌓인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는 천혜의 요새다. 지리적 이점 덕분에 톨레도는 서고트 왕국 시절인 6세기부터 무어인의 이슬람 시대를 거쳐 펠리페 2세가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기기까지 무려 1000년의 시간동안 스페인의 수도 역할을 했었다. 그래서 톨레도는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의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과 다른 독특한 매력을 느낄수 있다. 대표적으로 톨레도의 알카사르를 보면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보던 전형적인 이슬람 형식의 알카사르가 아닌 중세 고딕 양식이 섞인 형태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 중세 시대에서 시간인 멈춘 듯한 톨레도 >

 

< 화려한 고딕 양식의 톨레도 대성당 >

 


여전히 도시를 보호하고 있는 성벽을 따라 걷다가 성문을 통해 구시가지로 들어서면 미로처럼 얽혀있는 좁은 골목을 따라 어떻게 아직까지 건재한지 의문스러운 중세시대풍의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거리에 있는 상점이나 레스토랑 역시 최신 유행을 쫓는 여느 관광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게 고풍스런 분위기를 띄고 있다. 게다가 골목마다 보이는 기념품 가게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중국산 잡동사니가 아닌 중세 시대의 검, 갑옷, 방패 등을 팔고 있어서 톨레도 만의 특색을 느낄 수 있었다. 중세 시대 때부터 철제 갑옷과 검의 제작에 독보적이었다는 톨레도의 장인은 현대까지 이르러서 장식품 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속의 소품을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중세의 성과 고딕양식의 대성당, 기사의 갑옷과 검이 도처에 있으니 골목길을 걷는 여행자들은 마치 시간여행을 온 듯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다.

 

 

< 진짜 움직일까봐 조금 무서웠다. >

 


톨레도 구시가지의 골목길을 걷다보니 분명 전형적인 중세 분위기의 도시인데 미로 같은 좁은 길들이 마치 모로코의 메디나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게 해주었다. 아마도 수백년 동안 이슬람 왕국의 수도였기에 도시의 형태는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뿐아니라 창문이나 아치의 형태, 건물 구조나 타일 벽면 등에서 희미하게 이슬람 문화가 보였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의 경우 이슬람의 색채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지만, 톨레도는 이슬람 세력이 이후에도 많은 문화적 발전이 있던 곳이라서 그런지 고딕 양식 속에 은근하게 섞여있는 분위기였다. 아마도 스페인 이전에 모로코를 먼저 여행하지 않았더라면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 번에 여러 문화권을 여행하는 일은 때로는 혼란스럽지만, 이처럼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어있는 다른 문화의 흔적을 눈치챌 수 있게 해주는 재미를 주는 것 같다.


톨레도는 도시 분위기와 성벽, 대성당이 주는 분위기로 중세 시대를 느낄 수 있었다면, 도시 가운데 위엄있게 자리잡고 있는 알카사르를 방문하면 스페인의 근현대사를 체험할 수 있다. 고대 로마시대에 지어진 건물에 서고트 왕국과 이슬람 제국, 기독교 왕국을 차례로 거치면서 요새와 궁전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군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나폴레옹의 침략과 스페인 내전을 겪으면서 파괴와 재건의 과정이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다. 특히 스페인 내전 때는 프랑코 군에 저항하다가 거의 폐허에 가깝게 파괴되었고, 그 알카사르에서 아들의 목숨을 포기하면서까지 항전하던 모스카르도 대령의 일화는 아직까지도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알리고 있다.

 

 

< 위엄있는 모습의 톨레도 알카사르 >

 

<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던 알카사르 중정 >


사실 톨레도는 마드리드 인근의 당일치기 여행지, 골목길이 멋있는 중세 분위기 도시로만 알고 찾아갔지만, 20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는 스페인의 역사를 압축해 놓은 서사시같은 곳이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수 백년간 쌓아두었던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올 것만 같은 현자의 모습을 가진 도시. 톨레도.



 

*** 톨레도 여행 Tips ***


Tip 1. 톨레도는 언덕 위에 만들어지 중세 도시이다. 따라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야만 구시가지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아래에 첨부한 지도를 보면 #1#2의 두 대의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버스 터미널 근처에 있는 #1을 추천한다. 버스에서 내려 평지로 이동하다가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쉽게 Zocodover 광장에 도착할 수 있다.


Tip 2. Zocodover 광장는 알카사르와 대성당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톨레도 여행에서 중요한 광장이다. 광장 건너편에는 여행자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고, 시티 투어 버스와 꼬마 열차가 출발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Tip 3. 톨레도 전경을 보기 위해서 버스를 타고 반대편 언덕위에 있는 파라도르 호텔을 찾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굳이 버스를 타지 않고도 훌륭한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위에서 설명한 에스컬레이터 #1을 타고 올라가는 중간에 주차장을 만나면 외부로 나가자. 도로를 따라 걸어내려가면 Alcantara 다리를 만날 수 있다.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올라가면 멋진 중세 성이 있는데, 지금은 유스호스텔로 운영되고 있다. 눈치보지 말고 들어가서 성의 뒷편 정원으로 가자. 멋진 전망이 기다리고 있다.


Tip 4. 톨레도에서 숙박을 한다면 위에서 말한 유스호스텔을 이용해보자. 이름은 Castillo de San Servando 이고, 위치는 아래 지도를 참고하시길.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중세의 성에서 묵는 체험을 할 수 있고, 톨레도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그림같은 전망은 보너스!!


Tip 5. 톨레도 알카사르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알카사르와 사뭇 다른 중세 분위기의 성이다. 내부는 군사 역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가능하면 일찍 입장해서 곧장 2층 중앙 정원으로 향하자. 사람이 없을 때에 은은한 클래식이 흐르는 중정을 걷고 있으면 중세의 왕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을지도... 톨레도 알카사르는 매주 일요일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니 일정 수립에 참고하시길.


Tip 6. 톨레도는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이다 보니 대형마트를 찾기 쉽지 않다. 대성당 부근의 재래시장 건물에 마트가 있기는 하지만 크지 않다. 식재료 구입을 위한 대형마트를 찾는다면, 버스 터미널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Supersol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