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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스페인] 코르도바 : 한 지붕 두 문화

 

두 달이 넘는 기간을 자동차 여행을 했던 탓일까? 짐을 들고 숙소를 찾아 다니는 일이 새삼 힘들게 느껴졌다. 그래서 방문 도시를 줄여서 이동을 최소화하기로 마음먹고 남은 20 여일을 세비아와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 집중하기로 했었다. 그렇게 일정을 수정하면서 머물 숙소와 교통편을 검색하는데 계속 코르도바(Cordoba)가 눈에 들어왔다. 위치도 그라나다와 세비야의 중간 쯤에 있어서 거쳐서 가면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딱히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곳인데도 왠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 농장 >

 


그라나다에서 코르도바로 가는 버스 밖으로는 올리브 농장이 끝없이 이어졌다. 올리브 나무들이 줄을 지어 들판을 가로질러 산을 타고 넘는 모습이 1시간 가량 이어지다가 마침내 저멀리 붉은빛의 도시가 아스라히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세비야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길 건너편에 있는 기차역에 갔다. 오후 2시 반이었지만 매표소는 대부분 문을 닫고 오늘 출발하는 표만 구매 가능한 창구 한 군데만 긴 줄을 세워가며 운영하고 있었다. 투덜대며 돌아서려는 순간, 지금이 시에스타 시간임이 떠올랐다. 그렇다, 시에스타 때는 길거리 상점만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관광소나 기차역 매표소도 문을 걸어 닫고 쉬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아무리 시에스타라고 해도 이렇게 날씨 좋고 선선할 때는 조금이라도 더 벌고자 그냥 일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들은 자신의 휴식 시간을 돈벌이를 위해 양보하지 않았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미래의 휴식시간보다 지금 당장의 휴식시간이 더 값지다는 것을 아는 걸까? 3시가 넘어서자 한 두 곳씩 창구가 열리더니 이내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고 나도 기차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에어비엔비를 통해 찾아간 Ricardo 씨 집에는 정작 주인은 여행을 떠나고 이웃 주민이 전해준 열쇠를 가진 우리만 마치 내집처럼 사용하게 되었다. 가끔은 저렴한 가격의 개인실을 예약하고 갔지만 집전체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차차 에어비엔비에 관해 포스팅하면 이런 집을 찾는 노하우를 소개하겠다. 도착한 날은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서 신나게 요리를 해서 만찬을 즐기고 밀린 빨래를 하며 쉬다가 다음날 아침 일찍 코르도바 시내로 향했다.

 

< 로마 다리 넘어로 그 유명한 메스키타가 보인다. >

 

< 소설 돈키오테의 무대가 되었던 포트로 여관 >


코르도바를 방문한 여행자들은 모두 메스키타(Mazquita) 대성당을 보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겉으로 보면 그냥 성벽과 높은 종탑, 고딕 양식의 첨탑으로 이루어진 평범한 대성당으로 보이지만, 내부에 들어가면 독특한 건축 양식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원래 메스키타는 785년에 아브드 알라흐만 1세에 의해 지어진 이슬람 모스크였다. 그러나 기독교 왕국의 국토회복운동으로 이슬람 세력이 떠난 후에 카톨릭 성당으로 개조되어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부에는 이슬람 사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치형 문과 넓은 홀, 아라베스크 문양과 카톨릭 성당의 제단과 성가대, 파이프 오르간 등이 한데 어우러져서 이슬람과 가톨릭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넓은 홀의 천장을 받치고 있는 850여개의 기둥과 아치는 단순함과 반복을 통해 시야를 압도하고, 모스크 미나렛을 개축하여 만든 종탑 아래에는 줄지어 오렌지 나무가 늘어선 정원이 신비로운 인상을 남긴다.

 

< 메스키타의 내부, 850여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홀 >

 

< 메스키타 종탑과 오렌지 정원 >

 

< 메스키타의 외부와 주변은 여전히 이슬람의 흔적이 느껴진다. >


메스키타를 돌아보면서 몇 달전에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바로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였다. 다른 점이라면 아야 소피아는 원래 기독교 성당이었으나 이슬람 세력이 점령한 후에 모스크로 사용했었고, 메스키타는 원래 이슬람 모스크였으나 기독교 성당으로 추가 건설되었다는 점이다. 종교 중심의 사회였던 그 시절, 비록 자신들이 점령한 이교도의 건축물이지만 그 아름다움에 차마 허물어버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어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아야소피아나 메스키타를 방문하면 두 종교간의 오묘한 조화와 함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대의 위대함을 애써 누르고 자신을 돋보이려는 자존심 대결이 느껴진다. 아야 소피아 벽면에 이슬람 성자의 이름을 쓴 거대한 원판들과 메스키타의 눈부시게 화려한 중앙 제단을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래, 니네가 이겼다. 애썼수.




*** 코르도바 여행 Tips ***


Tip 1. 메스키타는 매일 아침 830분부터 930분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그렇다고 9시 반 이전에만 입장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말자. 925분 부터 내부 관람객을 모두 퇴장시키니, 가능하면 일찍 입장해야 제대로 관람할 수 있다.


Tip 2. 코르도바 기차역은 버스정류장과 나란히 붙어 있다. 코르도바는 메스키타를 중심으로 도보로 쉽게 돌아볼 수 있는 규모이기에 세비야나 그라나다에서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다. 그라나다에서 코르도바까지는 버스로 2시간(편도 14.84 유로, 201510), 세비야에서 코르도바까지는 고속열차로 1시간(편도 19.01유로, 2015년 10월) 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