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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스페인] 세비야 : 또 비야


스페인 여행을 앞두고 굉장히 기대했던 곳 중에 한 곳이 세비야(Sevilla) 였다. 세비야 대성당과 스페인 광장 만으로도 충분히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도시. 하지만 세비야에 도착한 날부터 3일 내내 비가 내렸고, 맑은 날의 세비야를 포기하고 떠나는 날은 화창하게 맑아서 기차역으로 가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세비야는 기대감이 아쉬움으로 바뀐 도시였다.


코르도바에서 고속전철 AVE를 타고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서 Sevilla Santa Justa 역에 도착했다. 140 km의 거리를 짧은 시간에 이동하여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가끔은 천천히 달리며 풍경의 냄새까지 느낄 수 있었던 스리랑카의 완행열차가 그리울 때가 있다. 눈을 두기가 무섭게 사라지는 창밖 풍경을 보고 있자니 급한 일도 없는 여행자가 뭐하려고 고속전철에 얹혀서 급히 달리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통, 통신, 컴퓨터의 발달로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빨라지고 있다. 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정보 검색은 물론 은행 업무를 비롯한 각종 행정적인 일을 손끝으로 바로바로 처리할 수 있는 세상이다. 모든 일이 빨리빨리 처리되면 좀 더 여유롭게 쉴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날 줄 알았는데, 여유를 즐길 시간도 빨리 지나가 버리는 건지 점점 더 바빠지는 듯 하다. 자동차도 전화기도 없던 시대가 지금보다 더 여유로웠지 않았을까 싶다. 마치 쳇바퀴가 점점 빨라져서 이제는 쉴 틈조차 만들기 힘든 상황이 되어가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아마도 나는 더 빨리지기 전에 잠시 쳇바퀴에서 내려온게 아니었는가 싶다. 다시 올라간다면 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굴려봐야겠다.

  

< 세비야 산타 후스타 기차역 >

 

세비야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자마자 곧바로 세비야 대성당을 찾아갔다. 어짜피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라서 실내 관람을 먼저 하려는 생각도 있었고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라는 세비야 대성당의 웅장함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시내 한 가운데 있는 세비야 대성당은 98m 높이의 히랄다 탑 덕분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굳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당을 찾은 관광객이 꽤 많았다. 한참을 줄을 선 끝에 입장한 성당의 내부는 입이 벌어질 만큼 웅장하고 거대했다. 성당을 지을 당시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크게 짓겠다고 다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미친듯이 거대한 성당이었다.

 

 

< 어디서 봐도 절대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세비야 대성당 >

 


세비야 대성당은 거대한 규모와 화려한 성물 박물관, 도시가 한 눈에 볼 수 있는 히랄다 탑 말고도 아주 유명한 것이 있다. 바로 콜롬버스의 묘이다. 이게 아직도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네 명의 왕이 관을 들쳐매고 있는 형태의 특이한 형태의 무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낸다. 스페인에서는 성인으로 추앙받는 콜롬버스의 관이 양지바른 곳에 매장되지 않고 이렇게 성당 귀퉁이에 그것도 공중에 드러나 있는 이유는 콜롬버스의 유언(?) 때문이라고 한다. 인도를 찾겠다고 나선 그의 탐험은 신대륙 항로를 개척하는 성과를 이루긴 했지만 사실상 원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실패였다. 여러 번 항해를 떠났지만 인도 항로를 찾지 못 한 콜롬버스는 그의 열렬한 후원자 이사벨 여왕의 죽고 나서 후원이 끊기고 지위가 박탈되자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 며 쿠바에서 생을 마쳤다. 그 후 1902년에 이 곳으로 유해를 옮겨오면서 고인의 자존심을 지켜주고자 스페인 땅에 닿지 않도록 공중에 매달린 관에 모셨다고 한다. 마침 얼마전(1012)이 신대륙 발견일이었기에 아직도 그 날을 기념하는 화환이 주변에 놓여져 있었다.

 

< 콜롬버스는 죽어서도 공중이라는 신대륙에 묻혔다.>


 

세비야 대성당 건너편에는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알카사르(Alcazar)가 있다. 알카사르는 이슬람 시대에 지어진 요새를 훗날 개축하여 왕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던 안달루시아 지방은 어느 도시에나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알카사르와 대성당이다. 이슬람 시대에 지어진 요새와 모스크가 기독교 왕국의 점령 후에 왕궁과 대성당으로 변신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코르도바의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세비야 대성당도 모스크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라서 미나렛을 개조한 종탑과 그 아래 오렌지 정원을 볼 수 있다. 세비야의 알카사르도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처럼 이슬람 왕조에 의해 지어진 건물과 정원을 국토회복운동 이후에 점령한 기독교 왕인 페드로 1세에 의해 지금의 모습을 띄게 되었다.

 

 

< 세비야 알카사르, 처녀의 파티오 >

 

< 비가 와서 우울하게 보였던 스페인 광장 >

 

< 세비야의 밤거리, 대성당의 야경을 기대했지만 조명이 없었음 >

 


그 밖에도 고풍스러운 세비야 대학, 화려한 스페인 광장, 과달키비르 강이 내려다 보이는 황금의 탑 등을 돌아보며 로마, 이슬람, 스페인 제국을 거치면서 도시에 남은 문화의 흔적을 찾아 다녔지만 수시로 내리는 비와 싸늘한 가을 날씨로 축 쳐진 분위기의 여행이 되버렸다. 날씨가 나쁠때마다 느끼는데 여행이 주는 즐거움의 8할은 날씨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싶다. 날씨가 좋을 때는 아무리 초라한 공원을 걸어도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기쁨이 느껴지는 반면에 비오고 추울 때는 세계적인 문화 유산을 봐도 그냥 ‘사진으로 봤던 그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여행 내내 가는 곳마다 날씨가 좋을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기대했던 곳에서 날씨가 안 좋으니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 세비야에서 맑은 하늘은 떠나는 날 기차역 사진뿐이구나 >


 


*** 세비야 여행 Tips ***


Tip 1. 세비야 대성당 앞은 항상 입장권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이 서있다. (입장이 아니라 표사는 줄이다.) 사실 세비야 대성당 입장권은 근처에 있는 살바도르 성당을 함께 들어갈 수 있는 통합 입장권이다. 따라서 긴 줄을 서서 세비야 대성당에서 표를 살 필요없이 인기없는 살바도르 성당에서 표를 사면 세비야 대성당은 바로 입장이 가능하다. (통합 입장권 9 유로, 201510)


Tip 2. 알카사르는 월요일 폐관 직전에 무료입장 찬스가 있다. 내가 갔던 10월에는 오후 4시부터 무료입장이었는데 3시반에 갔을 때는 이미 200여명이 대기중이었다. 무료 입장 가능 시간보다 적어도 30분은 일찍가서 기다리자. 공짜라는데 그 정도 수고는 해야지. 황금의 탑도 월요일에는 무료 입장이 가능하니, 세비야 일정은 월요일에!!


Tip 3. 세비야 시내에서 우연히 한국 식품을 파는 중국 마트를 발견했다. 이름은 Hiper Orient 이고, 구글맵에서 상호명 검색을 하면 바로 찾을 수 있다. 주소는 Calle Aponte, 8 이고, 대성당에서부터 북쪽으로 이어지는 보행자 거리 끝나는 부분에 있는 El corte ingles 백화점 부근이니 접근성도 좋다. (한국 라면 1.25유로, 20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