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럽

[스페인] 콘수에그라 : 거인의 언덕


톨레도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시외버스를 타고 콘수에그라(Consuegra)로 향했다. 메마르고 바람이 많은 라만차의 평원을 달리는 동안 버스는 작은 시골 마을을 거치면서 사람들을 태우고 내리기를 반복하다가 이윽고 목적지인 콘수에그라에 도착했다. 정오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은 우리말고는 없었고 심지어 동네 주민들도 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리는 한산하고 조용했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여행자 정보센터에 들어가자 한가하던 차에 우리가 와서 반가웠는지 안내 직원이 무척이나 친절하게 지역 소개를 해주었다. 지도를 들고 거리로 나와 언덕으로 향했다. 돈키호테의 거인을 만나러...


카스티야 라만차 주는 스페인 한가운데에 위치한 지역으로 인구밀도가 낮고 황량한 벌판이 많은 곳이다. 이곳 고원지역은 오래 전부터 바람이 많은 곳으로 언덕마다 풍차를 설치해서 곡식을 빻는데 활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콘수에그라와 캄포 데 클립타나와 같은 몇몇 마을에만 일부 남아있고, 거대한 풍력 발전기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 풍차가 있는 언덕에 오르면 콘수에그라와 라만차 평원이 내려다보인다. >



마을을 가로질러 풍차들이 자리잡은 언덕까지는 1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마을 뒤로 난 계단길을 올라가자 각자 이름표를 단 풍차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10월말의 비수기라서일까 마침 언덕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반쯤 허물어진 성과 움직임을 멈춘 풍차 10대가 줄지어 있었다. 창을 들고 돌진했던 돈키호테와 달리 우리는 카메라를 들고 거인을 향해 샷을 날렸다. 시리도록 파란 가을 하늘 아래에 묵묵히 언덕 아래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하얀 거인들이 늘어선 모습은 신비로웠다. 그다지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었고 바람이 분다 한들 풍차들도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않을 테지만, 당장이라도 팔을 휘두르며 살아 움직일 것 같았다. 로시, 산초, 알콘시아... 풍차마다 고유의 이름이 있기 때문일까? 아님 돈키호테 때문일까? 풍차는 마치 사색하는 거인과 같은 모습이었다.


< 줄지어 서있는 거인들 >


<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Rocci >


< 언덕에서 내려다 본 라만차의 평원 >



거인의 그늘에 앉아서 평화롭게 펼쳐진 라만차의 평원을 바라보고 있자니 실제로 돈키호테가 있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이상을 쫒는 미친 낭만 기사. 어쩌면 지금의 세상도 세르반테스가 그렸던 돈키호테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마음 속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히어로를 기다리기에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수많은 맨들이 만들어져 대리만족을 시켜주고 있다는 것은 세상의 정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게 아닐까? 세상을 구하는 또는 정화시켜줄 히어로가 나타난다면 화면속의 전지전능한 그들 보다는 돈키호테처럼 인간적이고 순수한 모습의 영웅이었으면 좋겠다.


< 라만차의 돈키호테 >




*** 콘수에그라 여행 Tips ***


Tip 1. 톨레도에서 콘수에그라로 가는 버스는 생각보다 자주 있지는 않다. 2~3시간 간격을 두고 운행을 한다. 미리 톨레도 버스터미널에서 확인하자. (왕복 9.36 유로, 201510)


Tip 2. 콘수에그라는 아무리 천천히 돌아다녀도 3시간이면 충분한 곳이다. 915분에 출발하는 차를 타고 1030분이 조금 넘어 도착하여 걷다 쉬다를 반복하고 언덕 위에서 간식도 먹으며 여유를 부렸지만, 1330분 버스를 타고 톨레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Tip 3. 작은 마을이다 보니 맘에 드는 식당을 발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차라리 미리 도시락을 준비한다면 탁 트인 전망이 있는 언덕에서 멋진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