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에서 완행버스를 타고 1시간 반을 달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Madrid)에 도착했다. 바르셀로나와 함께 소매치기로 악명이 높은 도시이기에 네르하에서 이미 당한 전적이 있던 우리는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철통같은 보안 태세를 유지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도심을 다닐 때는 아예 가방은 들고 다니지도 않고 바지 주머니에 카메라와 약간의 현금만 들고 돌아다녔다. 항상 주의를 하고 다녀서인지 다행히 마드리드에 머무는 동안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진작에 이렇게 했더라면 네르하에서도 안 당했을 텐데... 오히려 범죄의 그 현장을 목격하고자 광장이나 지하철역에서 수상해 보이는 사람의 거동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지만 프로페셔날한 그 분들은 어설픈 감시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시벨리스 광장. 시리아 난민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보인다. .
< 유럽의 어느 광장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멋진 마요르 광장 >
새로운 도시를 갈 때면 숙소를 찾아보는 과정에서 도시의 지도를 보며 도심지와 주요 명소들을 꼽고 대략적인 도시의 규모를 가늠해본다.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답게 그동안 여행했던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들과 비교해서 확실히 크고 복잡해 보였다. 대도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우리 부부는 마드리드에서는 최소한의 시간만 보내고 하루를 비워서 근교에 있는 세고비아를 다녀오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마드리드에 도착해서 돌아다녀보니 유럽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도심의 왠만한 명소는 도보로 돌아다닐 수 있었고, 곳곳에 광장과 넓은 정원이 있어서 쾌적했다. 결국에는 날씨가 안 좋다는 이유를 만들어 세고비아행을 포기하고 마드리드에 계속 머물었다.
< 마드리드 독립광장의 알칼라 문 >
< 가을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던 레티로 공원 >
< 레알 마드리드, 마드리드 왕궁 >
마드리드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곧바로 프라도 미술관을 찾아갔다. 미술에 대한 열정때문이 아니라 매일 폐관 전 2시간 동안의 무료개방 시간에 맞춰서 입장하려는 이유였다. 미술관 입구에는 우리와 같이 공짜 입장을 노리는 여행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동시 입장객 제한이 있지 않아서 오래 기다리지 않아 입장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여행하면서 파리의 루브르와 오르세 미술관, 피카소 미술관 등을 지나면서 많은 명작들을 만났었기에 사실 프라도 미술관에는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꼭 봐야하는 작품이 있는게 아니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위대한 예술품 사이를 산책했다. 그러던 중에 보쉬의 ‘쾌락의 정원’이라는 16세기 경에 그려진 신비로운 그림에 넋을 잃고 빠져들었고, 브뤼겔의’죽음의 승리’, 뒤러의 ‘아담과 이브’ 등의 작품들 앞에서는 쉽사리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본 작품들은 지금까지 갔던 어떤 미술관보다 인상적이고 마음에 울림이 있었다.
그동안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미리 조사해둔 유명한 작품을 찾아 다니기에 바빴었다. 사실 그 곳에 걸려있는 모든 작품들이 훌륭한 예술품임이 분명하지만, 우리와 같은 여행자들이 한 작품 한 작품을 여유있게 감상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보니 작품을 감상한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보고 왔다는 인상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방문이 무의미해지게 되었고 비싼 입장료를 내고 과연 무엇을 느꼈는가에 대한 회의감에 점점 미술관은 우리의 발길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무료 관람이라는 말에 들어갔던 프라도 미술관에서 ‘감상’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동안 많은 미술관들을 그냥 지나쳐왔던 것이 후회되었다.
< 매일 오후에 무료입장이 가능한 프라도 미술관 >
유럽은 어느 도시에서나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시민들에게는 저렴한 가격 또는 무료 입장의 기회를 주고 있어서 언제든지 미술관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년 시기 때부터 훌륭한 미술과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정서적인 풍요로움을 누리는 이들이 부러웠다. 예술은 내적인 안정과 다른 이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키워주는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그동안 외적인 자기 계발에 목매여 등한시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가끔 영화를 보거나 큰 맘먹고 유명한 공연을 관람하는 것으로 나름 문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뿌듯해왔던 것이 떠오르면서 과연 그 때의 나는 정말 예술을 즐기고 감동했던 것이었을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먹고사니즘에 빠져 내적인 양분 섭취에 게을리 해왔던것은 아니었을까? 언제부턴가 예술은 여유있는자들을 위한 사치로 생각했던건 아니었을까? 적어도 예술은 나의 삶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분리되어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의 경험이 그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마드리드 여행 Tips ***
Tip 1.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처럼 마드리드도 역시 무료 관람 찬스가 있다. 유럽 3대 미술관이라는 프라도 미술관은 매일 오후 5시부터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줄이 길게 서는 만큼 적어도 30분 전에는 가는 것을 추천한다.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은 매주 일요일 오후,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있는 레이나 소피아 국립 예술 미술관은 매일 19시부터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Tip 2. 마드리드에는 버스터미널은 운행 지역에 따라 분리되어 있다. 각 버스터미널은 지하철역과 같은 건물에 있어서 찾기도 쉽고 환승도 용이하다. 빌바오나 바르셀로나로 가는 버스는 ‘Avda. de America’ 역에서, 톨레도행 버스는 ‘Plaza Eliptica’역에서, 세고비아행 버스는 ‘Moncloa’역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다.
Tip 3. 마드리드 시내 관광의 중심지는 솔광장이다. 대부분의 관광명소가 솔광장에서 도보로 접근이 가능하다. 숙소 위치를 정할 때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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