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럽

[스페인] 네르하 :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스페인 남부의 코스타 델 솔에서 가장 인기있는 곳을 꼽으라면 아마도 네르하(Nerja)가 아닐까? 하얀색의 건물이 투명한 지중해를 향해 절벽위에 빼곡히 모여있는 아기자기한 작은 도시. 아마도 바다 멀리서 보면 해안 절벽끝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햐얀 갈매기떼처럼 보일 것만 같다.

 

<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연상하게 하는 하얀 마을 >

 

< 유럽의 테라스로 이어지는 네르하의 중심지 >

 

< 해안 절별 아래로는 호수같이 잔잔하 지중해를 즐길 수 있는 해변이 점점이 이어진다. 곳곳에 누드비치도... >

 

 

네르하의 중심지에서 해변을 향하는 절벽에는 ‘유럽의 테라스’라고 불리는 바다 전망대가 있다. 1885년 알폰소 12세가 국왕으로 재위하던 시절에 네르하를 방문하고 여기서 바라보는 지중해의 절경에 반해서 유럽의 테라스라고 불렀던 것이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테라스에 서서 바라보는 지중해의 풍경은 가히 최고라고 말할 만 했다. 네르하는 워낙 작은 동네이다 보니 지도도 필요없이 새하얀 골목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보면 그림같은 바다 전망대도 나오고 저렴한 해산물 레스토랑도 지날 수 있고 밤이면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떠는 타파스바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해안 절벽을 따라 내려가면 속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바다에 몸을 담그고 따사로운 남부의 태양 아래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해변들이 이어진다. 그렇게 네르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네다.

 

< 유럽의 테라스라 불리는 바다 전망대 >

 

< 유럽의 테라스에서 보는 눈부신 지중해 >

 

< 해질녘의 네르하와 지중해>

 

< 밤이 더 즐거운 네르하 >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네에서 우리에게는 눈물이 나는 일이 발생했다. 언젠가는 만나게 될 줄 알았던 그분들을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만났으니... 소매치기. 스페인이 워낙 소매치기로 악명이 높은 나라이긴 하지만 네르하 같은 시골까지 마수가 뻗어있을 줄은 몰랐다. 소매치기라는 것이 당하는 순간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앗 그놈이다’라고 떠오른다고 하지 않던가. 사건의 개요는 이러하다.


네르하에 도착해서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서 이동할 준비를 했다. 먼저 지갑과 귀중품이 들어있는 작은 크로스백을 매고, 메인배낭은 뒤로 보조배낭은 앞으로 매고 숙소를 찾아 출발했다. 앞 뒤로 배낭을 맨 상태이다 보니 크로스백은 자연히 내 시선이 닿지 않는 옆구리 쪽으로 밀려있었다. 그렇게 길을 가다가 아래 사진처럼 갑자기 길이 좁아지는 곳을 만났다. 그런데 우리 앞쪽에서 걷고 있던 흑형 3~4명이 갑자기 그 좁아지는 곳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2~3미터 뒤에서 걷고 있던 우리는 ‘아, 왜 하필이면 길 막히기 이런 곳에서 멈춰서 얘기하는 거야!’ 라고 투덜되면서 그들을 피해가던 순간. 기술이 들어간 듯!! 너무 자연스럽고 정말 짧은 순간이라서 알아챌 수가 없었다. ! ! ! 느그들을 고수로 인정한다. 호텔 리셉션에 도착해서야 활짝 열린 크로스백을 발견하고 털썩...

 

< 사건의 현장! >

 

여행 초반에는 현금은 작은 단위로 나누어 보관하고, 지갑에는 하루치 생활비만 담고 다니고, 현금과 카드는 동시에 들고 다니지 않는 규칙을 세워서 다녔다. 분실이나 소매치기를 당해도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신경쓰면서 다녔는데, 이제 6개월 정도 지났다고 긴장감이 풀렸나보다. 귀찮다는 이유로 지갑에 현금과 카드를 같이 들고 다니고, 분할 보관의 규칙도 느슨해지던 차에 사건이 발생했다. 게다가 소매치기 방지용으로 구매했던 팩세이프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안전고리도 걸지 않았었다. 당해도 싸다. 덕분에 며칠간 사용할 생활비와 체크카드를 잃어버렸다. 다행히 여권과 스마트폰은 무사해서 카드 사용 정지만으로 뒷수습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네르하에서 우리는 쓰린 속을 부여잡고 홍합탕에 맥주를 들이켜야 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 누군가에게는 환상으로 누군가에게는 악몽으로...

 

 

*** 네르하 여행 Tips ***

 

Tip 1. 네르하는 말라가에서 1시간, 그라나다에서 1시간 반 거리에 있다. 일정이 촉박한 여행자라면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편도 버스 요금은 말라가에서는 4.52 유로, 그라나다에서는 10.76 유로이다. (201510)


Tip 2. 네르하에서 7km 떨어지 곳에 '프리힐리아나;라는 햐얀색의 예쁜 마을이 있다. ALSA 버스가 서는 정류장에서 로컬버스로 가거나 택시로 갈 수 있다. 그 밖에도 네르하 동쪽에 거대한 석회동굴도 있다고 하니 여유가 되면 방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