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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스페인] 그라나다 : 다시 와야 할 이유


네르하에 도착 전까지만 해도 네르하에서 4~5일 머물면서 코스타 델 솔의 태양을 만끽하려 했었지만, 예상치도 못했던 ‘그 사건’ 때문에 2박만 하고서 그라나다(Granada)로 떠났다. 네르하에서 그라나다로 가는 버스에서 반짝반짝이는 지중해와 하얀색 마을들이 이어지는 풍경을 보며 떠나는게 몹시 아쉬웠지만, 여행 출발 전부터 기대했던 그라나다를 간다는 설레임이 미련을 떨치게 해주었다.


오래전에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이라는 연주곡을 듣고 클래식 기타를 배우려고 수 개월간 노력했던 적이 있다. 오직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할 수 있을 정도만 기타를 익히고자 했지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그리 만만한 곡이 아니었다. 타레가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아파하다가 알함브라 궁전을 바라보며 작곡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게 된 ‘그 곳’을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도록 했었다. 마침내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에 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알함브라 궁전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 산 니콜라스 광장에서 본 알함브라 궁전 >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이 기독교왕국의 국토회복운동으로 인해 쫓겨나는 과정에서 최후의 이슬람 왕조가 있던 곳이 그라나다였다. 그래서인지 언덕 위에서 그라나다 시내를 내려다 보고 있는 이슬람 마지막 궁전인 알함브라를 비롯해서 원래는 모스크가 있던 곳에 지어진 그라나다 대성당, 마치 모로코의 메디나를 연상하게 하는 알바이신 지역까지 60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이슬람 문화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불과 열흘 전까지 모로코를 여행하다가 온 나의 눈에는 평범한 주택이나 작은 기념품까지 곳곳에서 이슬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 종탑은 아직도 미완성인 그라나다 대성당 >

 

< 알바이신 지구로 들어가는 입구. 모로코 메디나가 생각나는 것은 기분 탓인가? >


유럽을 여행하다가 이어서 이곳을 여행했다면 이슬람과 카톨릭의 오묘한 동거에 흥미를 느꼈을 것이고 이슬람 건축의 아라베스크 문양에 감탄을 했겠지만, 그동안 요르단, 이집트, 터키, 모로코를 거치면서 아잔 소리가 익숙해진 나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신비롭다기 보다는 익숙했고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들이 반복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상태로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알함브라 궁전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미리 예약을 안해서 못 들어간 거 아니다. 예매 안 한 사람은 새벽 줄서서 입장하라고 해서 삐진 것도 절대 아니다.)


여러 나라를 한 번에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샌가 비슷한 문화권을 여행할 때면 점점 여행지를 대한 감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럽 배낭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성당과 정원을 매일 보다 보면 아무리 역사적인 의미가 있고 건축 기술의 결정체라고 해도 전혀 놀랍거나 새롭지 않은 때가 온다. 이게 아마도 장기 여행의 단점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물론 여행이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처음 가보는 도시가 식상하다면 길 위에 있는 이 순간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럴땐 눈으로의 여행이 아닌 다른 감각을 위한 여행을 찾아야 할 때이다. 사람을 만나고 문화를 즐기고 자연을 느끼는 것으로 관광(sight seeing)의 피로감을 풀어야 할 때가 지금 내 앞에 온 것 같다.

 

< 보는 이의 피도 끓게 만드는 플라맹코 >

 

그토록 가고 싶었던 알함브라 궁전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스페인은 이번 한번으로 스쳐지나가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곳이다. 다시 올 이유 하나 정도는 남겨놔야겠다.



 

*** 그라나다 여행 Tips ***

 


Tip 1. 알함브라 궁전 입장권은 인터넷을 통해 사전에 예매해야 한다. (http://www.ticketmaster.es/en/recintos/la-alhambra-de-granada/)

예매를 못 했다면, 당일 현장에서 구매가 가능하지만 길게 줄을 서는 것을 각오해야 함. 인포메이션 센터에서는 7시 이전에 줄을 서는 것을 추천함. 줄서는 것도 싫다면 시내 곳곳의 서점에서 파는 입장권 구입을 시도해 보다. 매표소가 마감된 오후 5시 이후에 사는 것을 추천한다.


Tip 2. 알함브라 궁전의 전경이 보이는 산 니콜라스 전망대(Plaza de San Nicolas)는 알바이신 지역 꼭대기에 있다. 올라갈 때는 누에바 광장(Plaza Nueva)에서 C1 버스를 타고, 내려올 때는 걸어서 알바이신 거리를 누벼보자.


Tip 3. 누에바 광장(Plazs Nueva)에서 알함브라 궁전과 알바이신 지구 사이에 있는 다로 강변을 따라 걸어가면 집시들이 동굴 집에서 살았다는 사크로몬테 언덕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