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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스리랑카] 히카두와 : 배낭여행자에게 완벽한 숙소란?

 

가능하면 야간이동은 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저가 항공권의 유혹에 두바이에서 출발하는 심야 항공편에 몸을 실었다. 새벽녘에 스리랑카 콜롬보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전날 피로한 몸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비행기에서 선잠을 잤기에 정신이 몽롱하고 온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스리랑카의 첫 목적지인 히카두와까지는 아직도 4~5 시간이 소요되는 긴 여정이 남아있었다. 먼저 공항에서 한 시간 남짓 시내버스를 타고 콜롬보 역으로 가서 기차로 갈아타고 100km 정도 떨어진 히카두와로 향해야 한다. 다시 히카두와 역에서는 수 십 kg의 짐들을 들고 예약한 숙소를 찾아 나서야 한다. 공항 문을 나서고 버스 스탠드로 향하는 짧은 길에도 수 많은 택시 기사들이 들러붙어서 택시를 탈 것을 권유했다. 평소 같으면 들은 척도 안하고 빠른 걸음으로 버스를 타러 갔을 텐데, 야간 비행으로 정신도 멍하고, 땀에 절어 끈적끈적한 몸은 지쳐있고, 배낭은 평소보다 배로 무겁게 느껴져서 택시 기사들의 유혹이 몹시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유혹을 간신히 뿌리치고 버스 앞에 도착했는데, 버스 계단이 왠지 너무 높게 느껴졌다. 내가 올라갈 수 없을 만큼...... 바로 근처에 있는 택시 기사를 잡고 흥정을 했다. ‘히카두와까지 한 번에 택시로 가는데 얼마면 되겠냐?’ 콜롬보도 아닌 히카두와까지 장거리 손님이다보니 기사들도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푸근해 보이는 인상의 기사와 질긴 협상 끝에 히카두와까지 합승을 허락하고 20USD에 타기로 했다. 결국 합승객을 못 구해서 30USD에 가긴 했지만, 고속도로 통행료와 100km 거리를 감안하면 놀라운 가격이었다. (사실 적정 가격은 50USD였고, 우리가 탄 것은 사설 야매 택시였다.)

 

< 히카두와 해변 >

 

< 히카두와 해넘이 >

 

히카두와는 에메랄드 빛의 바다에 서핑에 최적인 파도와 훌륭한 다이빙 포인트까지 있는 스리랑카 서남부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히카두와에 머무는 동안 깨끗하고 따뜻한 남국의 바다와 신선한 씨푸드를 실컷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를 감동시킨 것은 해질녘에 푸른 바다 위의 오렌지빛 석양도 바다 거북과 함께하는 스노클링도 아닌 완벽한 여행자 숙소였다.


혼자 여행할 때는 숙소는 그냥 몸만 누울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몇 천원짜리 도미토리룸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혼 후에 아내와 같이 여행을 하면서도 숙소는 그냥 걸어갈 만한 위치에 가격만 싸면 별 고민없이 하루밤을 보냈다. 수 년전에 말레이시아의 쁘렌티안 섬을 여행할 때는 판잣집이나 다름없는 허름한 숙소에서도 일주일 동안 즐겁게 지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다음 해에 인도네시아의 길리 뜨라왕안에서 야자수에 둘러싸인 수영장과 독립된 방갈로로 이뤄진 (심지어 가격도 저렴했던) 숙소에 머물면서 여행지의 만족도에 훌륭한 숙소가 차지하는 부분이 작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숙소 선정이 까다로워졌다.


배낭 여행자에게 훌륭한 숙소의 조건이란? 물론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좋은 호텔에 묵으면 모든 것이 완벽하겠지만, 하루에 몇 만원 이하 수준의 저렴한 숙소를 찾는 배낭 여행자들은 일정 부분은 포기해야 한다. 그러기에 여행자들은 가장 우선시하는 요인을 기준으로 적당한 숙소를 조사하고 숙박비가 적절한 가에 대한 나름대로 평가를 통해 결정한다. 나의 경우는 숙소의 위치가 가장 중요했고, 아내는 청결도가 평가의 기준이었다. 물론 저렴한 가격은 기본이었기에 만족스러운 숙소를 구하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 히카두와에서 우리의 모든 기준을 만족시킨 저렴한 여행자 숙소를 찾아버렸다.

 

 

< Finlank Hotel 외관 >

 

< Finlanka Hotel 내부 >

 

혹시 히카두와를 방문할 계획이 있는 여행자를 위해 잠시 숙소를 소개하자면, 우리가 묵은 숙소는 ‘Finlanka Hotel로 주인 아저씨가 예전에 핀란드에서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초청하면서 FinlandSri lanka를 합쳐서 지은 이름이란다. 먼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위치가 완벽하다.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에서 5분 이내의 거리이면서 해변과도 가깝고, 근처에 레스토랑, 슈퍼마켓, 재래시장이 있어서 편리하다. 기찻길 옆에 있어서 가끔 기차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한 시간에 한 번 꼴이라서 그리 불편하지 않다. 전면이 통째로 창으로 만들어져서 채광이 훌륭한 방에는 바삭바삭하게 말린 순면 침구류의 침대와 낮잠용 간이 침대, 미니 주방, 냉장고, 에어컨, 케이블 TV, 화장대, 안전금고 까지 있었다. 흠잡을 곳 없이 깨끗한 욕실과 방은 넓어서 우리 짐을 마구 펼쳐놓고 쓰기에도 부담없었고, 하얀 타일 바닥은 늘 시원하고 청결한 상태를 유지했다. 게다가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먹는 훌륭한 스리랑카식 아침식사까지...... 배낭 여행자를 위한 숙소의 완벽한 모습을 갖추고도 1박에 3만원이 안된다. (숙박을 연장하면서 네고해서 저렴한 가격으로 묵을 수 있었다.)

 

< 하루종일 배가 든든했던 아침식사 >

 

 

히카두와에 머물면서 인근에 있는 갈레와 우나와투나를 다녀왔는데, 매번 숙소 근처에 도착할 때면 우리 둘 다 ‘아~ 드디어 집에 왔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고, 이제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야 하는데 벌써부터 아쉬움이 든다.


단점을 하나 꼽자면, 여기 머물면서 다음 여행지인 웰리가마, 하퓨탈레, 엘랴, 캔디 등의 숙소를 조사하는데 눈이 높아질데로 높아져서 무엇을 봐도 성에 차지 않으니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