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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불가리아] 소피아 : 쓰빈스코 메쏘

 

< 여행기가 많이 밀렸네요. 이집트와 터키 여행기는 잠시 미루고 ^^ 기억과 감상이 사라지기 전에 최근 내용을 먼저 올립니다. 2015. 07. 05 >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가리아는 계획에 없었다. 원래는 터키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로 넘어가서 유럽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터키의 쿠샤다시에 머물면서 그리스 미코노스를 들어가기 직전에 계획을 수정해서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불가리아로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요르단에서는 물가가 비싸서, 이집트에서 그 놈의 이집션들 때문에 일정을 많이 줄이는 바람에 터키 여행 일정이 2주나 늘어나 버렸다. 아무리 느긋하게 다닌다고 해도 한 달 반이나 터키에만 머물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유럽으로 들어가자니 쉥겐 협약으로 인해 여행 일정이 꼬일 것 같았다. 그리스가 파산을 하느니 유로존에서 탈퇴를 하느니 하면서 시끄럽기도 해서 그리스는 건너뛰고 터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불가리아로 향했다. 불가리아행을 결정하기까지 가장 결정적인 것은 조금 있다가 설명할 '쓰빈스코 메쏘' 때문이었다.


이스탄불에서 밤 11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새벽 2시쯤에 국경에 도착했다. 북한에 가로막혀 섬나라와 다름없는 나라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육로로 국경을 넘는 일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지만 버스에서 자다 깨서 새벽 추위에 떨며 입국심사 기다리느라 사실 짜증이 났다. 다시 버스에서 못 다한 잠을 자고 일어나자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Sofia)에 도착했다.

 

 

< 터키-불가리아 국경, 다들 자다가 일어나서 비몽사몽 >

 

소피아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비몽사몽간에 배낭을 메고 거리로 나왔다. 소피아의 첫인상은 곳곳에 보인는 키릴문자 때문인지 러시아의 어느 소도시에 온 기분이었다. 예약해 둔 숙소를 찾아 걸으면서 본 거리는 삭막하고 차가운 느낌의 공산주의 시절에 세워진 거대한 건물들과 낡은 트램, 곳곳에 카지노가 눈에 띄어 서유럽의 도시와 사뭇 다른 분위기에 비로소 동유럽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불가리아는 오직 '쓰빈스코 메쏘' 때문에 충동적으로 찾아온 곳이기에 아무런 조사도 준비도 하지 못하고 왔다. 그냥 수도가 소피아이고 장미로 유명한 나라 정도 밖에 모르고 왔기에 뭔가 도움이 필요했다. 다행스럽게 불가리아의 주요 도시에는 자원봉사자로 운영되는 Free Walking Tour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참가했다. 소피아 중앙법원에 시작해서 주요 유적지, 이슬람 사원, 대통령궁, 중앙부처 건물, 국립 미술관등을 지나 유명한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까지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두시간 반 동안 불가리아 역사에서부터 현재 사는 모습, 소피아의 발전사 등을 아주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가이드를 해주었던 Ani는 연극 배우인데 잠시 쉬는 틈을 타서 자원봉사 중이었다. 배우라서 그런지 성량도 풍부하고 의사전달력도 훌륭했었다. 특히 투어를 마치고 웅장한 네브스키 성당 앞에서 불가리아 민요를 불러주던 순간은 참가자 모두를 감동시켰고 그 결과는 두둑한 팁으로 이어졌다.


 

< 소피아 워킹 투어, 열성적인 가이드 Ani >

 

< 60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소피아. 지하철 공사하다 발견된 기원전 세르디카 유적 >

 

< 소피아 거리에는 곳곳에서 온천수를 마실 수 있다. >

 

< 과거 공산당 청사. 공산주의 시절의 파워를 느낄 수 있는 거리 >

 

< 대통령궁. 그런데 건물 뒷편은 카지노라니! 심지어 붙어 있는 옆 건물은 일반 아파트다. 불가리아에서 가장 안전한 아파트>

 

< 소피아의 꽃,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 >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이드북이나 블로그, 기사 등을 통해 여행 명소에 대한 설명과 함께 작성자의 감상 후기를 함께 접하다보니 알게 모르게 선입견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후기가 시원치 않은 곳은 왠지 가보기도 전에 이미 마음속에는 별거 있겠어 라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불가리아 여행은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로 도착한 도시에서 명소를 눈앞에 두고 설명을 들으면서 여행을 하니 온전히 나만의 주관적인 감상을 할 수 있는 여행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가끔은 이런 무계획의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불가리아에 무계획의 여행을 계획하게 된 계기가 바로 앞에서 말했던 '쓰빈스코 메쏘' 때문이었다. 어떤 나라를 여행하면 가장 먼저 외우는 현지어가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 정도인데 불가리아에서는 처음 외우는 단어가 쓰빈스코 메쏘 였으니, 그 뜻은 돼지고기 이다. 심지어는 요상하게 생긴 키릴문자로 읽고 쓸 줄도 안다. 왜 하필 돼지고기 인가? 사실 여행을 출발한 이후로 돼지고기를 제대로 먹을 기회가 없었다. 네팔에서는 첫 여행지라선지 별 아쉬움이 없었고, 스리랑카에서는 몇 번 먹을 수는 있었는데 이슬람 문화권으로 넘어온 이후로 두달간 돼지고기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닭고기에 질려서 이슬람 국가를 벗어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가 터키에서 시간 여유가 생기자 바로 돼지고기를 찾아 불가리아로 왔다. 미리 주방이 있는 숙소를 예약하고 소피아에 도착하자 마자 쓰빈스코 메쏘를 외치며 마트로 뛰어가 삼겹살을 사들고 숙소 주방으로 왔다. 열악한 주방 시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릇노릇 구워서 한 점 입에 넣는 순간! 아~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고기는 역시 쓰빈스코가 최고닷.

 


< 나의 사랑 삼겹살이 100g에 500원 정도 밖에 안 한다. 불가리아 물가 최고! >

 

 

매 끼니 돼지고기를 즐기며 소피아 여행을 하다가 근교에 유명한 릴라 수도원에 가게 되었다. 과거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는 500여년의 세월에도 꿋꿋하게 불가리아 정교회를 지켜왔던 불가리아의 정신적인 성지같은 곳이다. 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릴라수도원은 말도 못하게 화려한 벽화와 놀라운 건축양식으로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는 곳이다. 이런 불가리아의 성지에서 나 또한 그 옛날 수도사들에게 감사를 하게 되었다.

' 500여년의 이슬람 치하에서도 꿋꿋하게 종교를 지켜주셔서 오늘날 제가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 릴라수도원, 가는 길이 쉽지는 않지만, 충분히 가 볼만한 엄청나게 멋진 수도원 >

 

 

*** 소피아 여행 Tips ***


Tip 1. 소피아 Free Walking Tour는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6시에 법원앞에서 출발한다.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공짜투어이지만, 약간의 팁을 준비하는 당신은 센스쟁이.


Tip 2. 소피아 시내에는 곳곳에 마실 수 있는 온천수가 나온다. 빈 물병과 티백을 준비하면 따로 음료수를 살 필요가 없다.


Tip 3. 소피아는 트램과 지하철, 버스가 굉장히 촘촘하게 이어져 있어서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노선이 표시된 소피아 지도를 구해서 타고 다니면 편리하다. 요금은 무조건 1레바. (20157)


Tip 4. 지하철 Blue LineLavov most 역은 플랫폼에 가로등이 있어서 굉장히 이색적이고 아름답다. 역 밖으로 나오면 구역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Stefan stambolov 거리에 재래시장이 있으니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Tip 5. 릴라수도원 가는 길 : 시티 센터에서 5번 트램을 타고 서부 터미널로 간다. 릴라수도원으로 가는 버스는 오전 10시 20분 출발. 요금은 11레바 (2015년 7월)  돌아오는 버스는 수도원 입구에서 오후 3시에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