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라는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한 여행지이다. 장대한 설산을 배경으로 호숫가에 형성된 여행자 거리에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와 레스토랑이 많아 장기여행자들에게 부담이 없고, 우기를 제외하면 언제 방문하더라도 좋은 날씨에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한국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여행 친구를 사귀고 맘껏 수다를 떨 수 있어서 조금만 검색해보면 우리나라 맛집만큼이나 꽤 유명한 포카라 가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때문에 포카라에 온 여행자 중에는 이 곳의 매력에 빠져 계획보다 오래 눌러앉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게스트하우스나 식당을 직접 운영하며 정착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도 익히 포카라의 명성을 듣고 내심 기대를 많이 했다. 나는 2006년 인도 여행 중에 포카라에 가기 위해 국경까지 갔었다가 네팔 내부의 정치적인 문제로 국경이 폐쇄되는 바람에 포기했던 경험이 있어서 더 기대가 컸었다. 그래서 그 한을 풀고자 세계일주의 시작을 네팔에서 하게 되었다.
복잡하고 매연이 심한 카트만두에 있다가 도착한 포카라는 비교적 깨끗하고 조용한 인상이었다. 무엇보다도 넓은 호수와 병풍처럼 둘러싼 히말라야 설산을 보면서 포카라에 대한 많은 호평들이 이해가 되었다. 특히 포카라 뒷산 정도로 말할 수 있는 사랑콧에 올라서 본 히말라야 일출은 지금까지 본 어떤 일출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곳에 일주일을 보낸 지금은 포카라에 대한 약간의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
포카라는 자연경관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평화로운 자연경관을 누리고자 이곳을 방문한다. 하지만, 여행자들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관리가 되지 않는 듯하다. 수질 보존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는 페와 호수는 호수변에 온갖 쓰레기로 청명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고, 거리는 검은 매연을 뿜어대는 낡은 버스와 택시로 숨쉬기 답답할 정도였다. 사랑콧 주위엔 날파리 같은 패러글라이딩과 하늘에는 초경량 항공기의 소음으로 조용할 틈이 없었다. 포카라는 기대했던 맑고 깨끗한 자연 속의 여행지가 더이상 아니었다.
호숫가에 앉아 쉬던 중에 호객 행위를 하러 접근한 현지인 가이드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름다운 호수가 포카라의 상징인데 기대했던 것에 비해 너무 지져분한게 아니냐는 말을 했더니, 자신들도 안타깝다고 하며 정부가 돈만 밝히고 호수를 위한 예산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2001년 왕궁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왕가가 모두 죽고, 그 이후로도 계속된 민주화 투쟁과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로 아직도 정치적으로 불안한 국가라니 이해는 간다. 하지만 아름다운 여행지가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는 안타까움은 여전했다.
사실 호숫가의 쓰레기보다 더 실망했던 것은 무분별한 개발이었다. 알려진 관광지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포카라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개발이 많이 되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었다. 페와 호수 주변은 블럭마다 공사중인 건물이 하나씩 꼭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우리는 여행자 거리 중심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숙소에 묵고 있는데도 바로 옆과 뒤 건물이 공사중이라 낮에는 방에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소음이 심했다. 포카라의 개발은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니라 수 십년동안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포카라 토박이라는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저씨는 자신이 어렸을 때는 페와 호수가 너무 맑아서 그냥 마실수 있을 정도였고, 호수 주변에도 대부분 초원이라서 정말 그림처럼 아름다웠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70년대부터 히피를 비롯한 여행자들이 몰려왔고, 도로가 정비되면서 급속도로 발전해서 지금의 복잡한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아저씨는 방 5개 짜리 허름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도 큰 아들은 의사로 키워서 병원을 운영하고 작은 아들은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라고 하니 개발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신 듯 하다.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가끔 ‘**에 가봐, 아직 개발이 덜 되어서 참 좋아.’, ‘**는 너무 상업화가 되어버렸어. 이제는 매력이 없어.’ 같은 말을 주고 받는다. 매력적인 여행지는 여행객들이 모이고 관광산업이 발전하면서 금새 본래 색을 잃고 여느 관광지와 비슷해져버린다. 식당에 들어가도 현지 전통음식보다 햄버거, 스테이크와 같은 서양식이 주가 되어버리고, 보여주기식 전통 공연과 조잡한 중국산 기념품이 거리에 즐비해진다. 거리에 아이들은 물놀이를 즐기기보다는 팔찌나 열쇠고리를 팔기위해 관광객 뒤를 졸졸 따르거나, 대뜸 인사하며 구걸을 하기도 한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면서 변하고자 떠난 여행지에서 도리어 현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켜버린다. 이런 여행문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로 ‘공정 여행’이라는 개념이 등장했지만 완벽한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인터넷 검색과 풍문으로만 듣고 나만의 환상을 키워왔던 포카라는 '호수와 설산이 있는 이태원'같은 느낌에 실망을 했다. 물론 인도를 여행하면서 여러가지로 지친 여행자가 만난 포카라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을 것이고 히말라야 트래킹을 위해 방문한 여행자에게는 신천지로 가는 입구일테지만, 우리에게는 그냥 평범한 관광지일뿐이라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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