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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네팔] 포카라 : 게으름 연습


카트만두에서 8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좁은 산길을 달려 포카라에 도착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는 약 200km 거리지만 히말라야 산비탈을 따라 만든 2차선 도로는 속도를 낼 틈을 주지 않고 쉴새없이 커브가 있었고, 도로 포장 상태가 형편없어서 포카라에 도착할 때 쯤에는 꼬리뼈가 얼얼했었다.


포카라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체르의 설산을 등 뒤로 하고 페와 호수변에 자리 잡은 네팔의 휴양도시이다. 어디서나 히말라야 설산을 바라볼 수 있고 잔잔한 페와 호수에서 배를 저으며 호수에 비친 안나푸르나를 감상할 수 있다. 포카라에서 출발하는 당일치기 부터 한달이 넘는 일정까지 다양한 트래킹 코스가 있어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환상의 여행지이며, 설산을 바라보면서 하는 패러글라이딩이나 초경량 항공기 투어, 번지점프, 빙하가 녹은 급류에서 즐기는 래프팅까지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조금 더운 날씨와 조금 지저분한 것만 빼면 뉴질랜드의 퀸스타운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론 물가는 퀸스타운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 댐사이드에서 바라본 포카라 >



네팔 여행 일정을 13일로 잡았는데, 우리는 복잡한 카트만두가 싫어서 포카라에서 9일을 머물기로 했다. 저질 체력으로 힘들게 산을 오르기 싫어 트래킹도 하지 않고, 이런저런 액티비티들은 이곳이 아니라도 앞으로 수없이 기회가 있을 거고 딱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트래킹이나 액티비티를 즐기지 않는다면, 포카라에서 할 일은 별로 없다. 산악 박물관이나 작은 폭포, 동굴 같은 몇몇 명소가 있지만, 꼭 찾아갈 만한 곳은 아니었다. 여기서는 느즈막히 일어나서 멀리 설산을 보며 산책하고, 맛있는 음식 찾아먹고, 호수변에 앉아 책 읽다가 노을 보면서 맥주 한 잔하는 것이 일상이다.


< 페와 호수 보트놀이, 포카라 >


처음 하루 이틀은 참 편하고 좋았는데, 며칠이 지나니까 몸이 근질근질했다. 사실 몸보다는 마음이 불편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이게 뭐하는 짓이지?’, ‘지금이라도 다른 도시로 떠나볼까?’, ‘이렇게 빈둥대려고 회사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난 건가?’ 등의 생각으로 가만히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시간을 못 견뎌했었다. 아마도 마음 속에 게으름에 대한 죄의식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낭비하면 안된다.’, ‘남는 시간에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뒤쳐지지 않는다.’ 와 같이 효율적인 시간활용을 강조하는 환경에 있다가 나온지 얼마 안돼서 아직 적응을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사실 게으름은 여유로운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데... 언제쯤이면 마음 편하게 게으름을 즐길 수 있을까 싶다. 많이 채우거나 많이 비우거나 둘 중 하나일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