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만두, 파탄, 박타푸르가 자리잡고 있는 카트만두 밸리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유적들이 많다. 특히 카트만두는 사원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힌두교, 불교 사원이 많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아내와 같이 약속했던 것이 다른 사람들이 간다고 꼭 다 돌아봐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말고 우리 체력과 취향을 고려해서 꼭 가보고 싶은 곳만 선별해서 가기로 했다. 사실 우리의 목적은 관광이 아닌 여행이기에 경이로운 자연, 화려한 유물, 특별한 진미를 탐하기 보다는 조용한 여행생활자로서 다른 문화에 관조적인 자세로 스쳐 지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카트만두에 머물던 3일간, 우리는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 보다나트, 파슈파티나트를 찾아갔다.
[더르바르 광장]
더르바르 광장은 여행자 거리인 타멜에서 1.2km 떨어져 있어서 걸어서 쉽게 갈 수 있는 거리이다. 하지만 그리 쉬운 길은 아니다. 카트만두 거리를 가득 메운 차와 오토바이 때문에 매연과 흙먼지가 자욱하다. 살이 따끔거리는 뜨거운 날씨에 귀가 멍할 정도로 자동차 경적으로 가득한 거리를 매연을 마시며 걷고 있자니, 거리에 소가 좀 적을 뿐이지 인도 델리의 거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더르바르 광장에 도착하면 많은 사원과 탑이 펼쳐진다. 여행 출발 전에 카트만두 여행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많이 봐선지 ‘와! 놀랍다!’ 가 아니라 ‘아, 그거구나~’ 라는 반응, 신비롭다는 느낌보다는 상상했던 수준의 장면이 눈 앞에 나타난 정도였다. 여행을 가기 힘든 상황에서 여행 다큐는 좋은 볼거리이지만, 여행을 앞두고 보게 되면 마치 재미있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되는 듯 하다.
< 더르바르 광장, 카트만두 >
더르바르 광장에는 딸레주 사원, 마주 데발, 꾸마리 사원 등 힌두교 사원들이 많다. 그리고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 ‘하누만 도카’라고 카트만두의 구왕궁이다. 하누만 도카는 근대 네팔의 기초를 만든 트리부반왕을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만들어져 있다. 처음에는 낯선 문화에 대한 흥미로움으로 재미있었지만, 한 인물의 일상과 일대기를 다룬 박물관이다보니 트리부반왕에 대한 관심이 없는 우리는 금새 지루해졌다. 하지만 커다란 왕궁을 미로처럼 돌아다니는 재미와 삐걱거리는 9층 높이의 바산타푸르 탑에 오르는 스릴만으로도 충분히 가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 하누만 도카와 바산타푸르탑, 카트만두 >
[보다나트]
500!
250! 400! 250! 350! No more! 300! Call? Hmm OK, 300!! Are you happy?
이 소리는 아침
8시에
타멜거리에서 궁상맞은 깐깐한 여행자가 택시비 흥정하는
소리입니다.
타멜거리에서 보다나트까지는 꽤 먼거리라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보다나트는 카트만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거대한 불탑이다. 우리나라와 다른 티베트 불교의 불탑은 보다나트와 비슷한 반구형 형태를 보인다. 반구형 스투파에는 눈이 그려져 있는 탑이 올려져있는데, 두 눈은 부다의 눈을 상징하며 가운데 물음표처럼 생긴 코는 네팔 숫자 1인데, 모든 진리는 하나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미간과 이마 사이에는 삼지안이 있고 위쪽으로는 해탈에 이르는 13단계를 상징하는 계단과 연꽃 받침 등이 있다. 단순해 보이는 불탑이지만, 티베트 불교의 여러 가지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보다나트에 그려진 부다의 눈은 내가 어느 곳에 있어도 나를 쫒아 지긋이 내려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내내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불탑을 감상하려고 부다의 눈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불탑 바로 앞에 위치한 건물의 루프탑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아내와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세계문화유산을 목전에 두고 라씨를 마시는 작은 사치를 누렸다. 그 곳에서도 알 수 없는 묘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부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화내는 것도 아닌 신비로운 눈으로 나에게 ‘중생아, 너는 무엇을 얻겠다고 여기까지 왔는냐?’ 하며 말을 하는 것 같아서 보다나트에 있는 내내 부다의 눈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난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파슈파티나트]
나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대답은 파슈파티나트에서 찾을 수 있었다. 파슈파티나트는 네팔의 바라나시라고 불릴 만큼 네팔 힌두교도의 성지이다. 인도의 바라나시에 가면 갠지스강변에서 시신을 화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파슈파티나트에도 화장터가 있다. 이 곳을 흐르는 바그마티강은 성스러운 갠지스강의 지류로 이 곳에서 화장을 하면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믿고 있어서 죽을 날을 기다리면서 대기하는 건물까지 있다.
< 시바 신전과 사두, 파슈파티나트 >
파슈파티나트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타이틀과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인이 아니면 입장할 수 없는 사원들이 많아서 딱히 볼거리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비힌두교 여행자들이 이 곳을 찾는 이유는 인간의 죽음을 직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바그마티강 주변에는 항상 장례의식을 치루고 시신을 화장하고 있고, 그 건너편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불길에 타는 시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행자들이 길게 앉아있다. 누군가의 생의 마지막이 붉게 타오르는 모습과 나무와 함께 시신이 타는 냄새는 쉽게 잊혀지기 힘든 공감각을 만든다.
< 바그마티 화장터, 파슈파티나트 >
인간의 끝은 저렇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허무한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 바그마티 강변에서 아내와 함께 오랫동안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모든 공포의 근원은 죽음이라고 하는데 죽음을 직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여행의 시작 무렵에 만난 파슈파티나트의 화장터는 여행의 끝을 미리 생각해보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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