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일이면 세계일주를 출발한다.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배낭을 꾸렸다.
배낭여행자들의 커다란 배낭에는 온갖 잡동사니 여행용품이 들어있다. 아무리 사소한 물건처럼 보여도 간소한 짐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 끝에 고른 말그대로 엄선된 물건들이다. 세상 어디를 가도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해서 없어지면 현지에서 조달하면 되지만, 내 손에 익은 그 녀석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면, 귀후비개나 빨래줄 같은 것은 없어도 큰 문제는 없지만 은근히 불편해서 막상 사려고 돌아다녀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심사숙고해서 가지고 갈 물건들을 골라내는데, 나는 남자라서 그런지 별로 필요한 물건이 없어서 짐이 간소했다. 반면에 아내는 이것 저것 챙기다보니 배낭에 다 넣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매년 함께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배낭 싸는 스타일이 많이 비슷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장기 여행이다보니 준비할 게 많은가 보다. 아내는 나 몰래 집어 넣고, 나는 다시 몰래 꺼내기를 반복하며 두어번을 쌌다가 풀었다를 하고서야 배낭이 완성되었다.
옷은 가능한 적게 가져가기로 했다. 마땅히 멋진 옷이 없기도 하지만 여기서 옷을 챙겨가는 것보다 현지에서 저렴한 옷을 사입는 것이 현지 분위기에 튀지 않고 동화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라면이나 고추장, 고추가루 같은 음식물은 들고 가지 않기로 했다. 한 두번 먹겠다고 짐을 늘리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고, 여행 중에는 가능하면 현지 음식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돈 아끼겠다고 어설픈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것 보다는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을 먹고, 평생 먹어왔던 한식을 그리워하기 보다는 떠나고 나면 다시는 먹을 수 없는 여행지의 별미를 맛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배낭에 들어가게 된 물건들은 다음과 같다.
[개인 물건]
의류 : 윈드자켓 1, 긴팔상의 1, 긴바지 1, 반팔상의 2, 반바지 1, 속옷 5, 양말 5, 수영복, 장갑
신발 : 런닝화, 슬리퍼
렌즈류 : 비상용 안경, 썬글라스, 일회용 렌즈
화장품 : 기초화장품, 자외선 차단제 등
기타 : 일기장, 필기구, 우산, 비옷, 읽을 거리 등
[공용 물건]
전자기기 : 노트북, 스마트폰, 컴팩트 카메라, 액션캠, 멀티 어댑터, 메모리 카드 등
서류 : 여권 사본, 여행자 보험 증서, 리스카 계약서, 증명사진 등
세면용품 : 샴푸, 린스, 바디워시, 클링징폼, 면도기, 스포츠 타월, 비치 타월 등
의약품 : 말라리아 예방약, 진통제, 소화제, 지사제, 일회용 밴드 등
기타 : 자물쇠, 다목적칼, 청테이프, 손전등, 빨래줄, 목배게, 물티슈, 모기향 등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수없이 짐을 싸고 풀어야 할테니 쉽게 짐을 정리할 수 있도록 비슷한 종류의 물건들을 모아서 작은 가방으로 모듈화 시켰다.
세계일주를 가겠다며 일년 전에 미리 사두었던 배낭이 이제서야 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차곡차곡 빈틈없이 배낭을 채웠다.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을 하면서 고르고 골라서 배낭을 꾸렸지만, 아마 여행 중에 버려지는 것들도 있을 것이고 새로 합류하게 될 물건도 생기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배낭을 다 싸고 무게를 재어보았다. 저가 항공은 수화물 무게에 따른 비용이 확실하기에 정확한 무게를 알고 있어야 한다. 내 메인 배낭은 15kg, 보조 배낭은 8kg 이고, 아내의 메인 배낭은 10kg, 보조 배낭은 8kg 이었다. 다 합치면 40kg도 넘는 무게였다. 이 정도는 가벼우니까 하면서 하나 둘 넣어던 것들이 모여서 짐이 되어 버렸다. 물건에 대한 욕심과 배낭 무게는 트레이드 오프 관계인 것을...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배낭의 무게가 전생의 업보'라는 농담이 있는데 크게 틀린 것 같지 않다. 여행 중에 근력이 점점 향상 되거나 짐들이 하나 둘씩 줄어들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후자가 될 듯 T T)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묵직한 배낭을 메어보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오랫동안 생각만 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는 것이 느껴졌다. 언제나 이상과 현실과는 큰 차이가 있듯이, 양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가 상상만 하던 세계일주와 현실의 차이를 알려주는 것 같아서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두렵지는 않다. 무거우면 잠시 내려 놓으면 되고, 힘들면 쉬면 되지 않은가. 어짜피 백수가 남는게 시간인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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