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프샤우엔에서 버스를 타고 모로코의 마지막 여행지 탕헤르(Tangier)로 향했다. 지브롤터 해협의 길목에 있는 이 곳을 스페인어로 탕헤르, 프랑스어로는 땅제, 영어로는 텐지어로 불리는 만큼 제국주의 시대에 많은 열강들이 탐을 내던 땅이다. 탕헤르에서 스페인까지는 배로 30분 정도 거리로 날씨가 좋을 때는 바다 건너 스페인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서 많은 여행자들이 스페인으로 이동하기 위한 관문으로 탕헤르를 찾는다. 나 또한 탕헤르에서 며칠간 머물다가 페리를 이용해서 스페인으로 넘어갔다.
< 유럽 대륙과 인접한 탕헤르는 모로코의 다른 도시에 비해 세련된 듯 >
탕헤르에 도착하자 마자 미션이 시작됐다. 당연히 시내 중심에 있는 버스터미널일 줄 알고 나왔더니 예상에서 많이 벗어난 시 외곽이었다. AirBnB를 통해 예약했던 Omar 아저씨의 집까지는 꽤 거리가 있는 곳이라서 택시를 타고 갈 수 밖에 없는데... 여행한지 6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택시타는 일이 제일 어렵다. 달랑 주소만 들고 목적지를 설명하는 일도 쉽지 않지만, 미터기가 아닌 흥정으로 가격을 정해야 하는 경우에 얼마가 적당한 가격인지 모른체 협상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어쨌거나 이방인이 현지인과 똑같은 가격에 갈 수 있을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납득이 가능한 수준에서 바가지를 써야 할게 아닌가.
< 타기 싫어도 안 탈 수 없는 애증의 택시 >
버스터미널 앞에는 딱 한대의 택시가 서 있었다. 보아하니 미터기를 사용하는 택시가 아니라 흥정이 필요할 듯하다. Game Start!!
Round 1
일단 구글맵을 이용해서 대충 거리를 짐작해봤다. 약 10km 정도 거리. 이 정도면 30DH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택시기사가 걸어온다. 눈빛을 교환하자 싱긋 웃으며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 온다. 주소를 내밀자
“와~ 이거 굉장히 먼데. 음... 120DH은 받아야 겠어.”라고 말한다.
60~70 정도를 부를줄 알았는데 갑자기 큰 액수를 부르니 당황스러웠다.
“무슨 소리야! 여기 별로 안 멀어. 다 알고 왔다 50에 가자.”
“아냐~ (니가 뭘 알아) 거기 15km 도 넘어. 내 눈을 봐. 난 진실만을 말해.”
두 눈에는 음흉함이 가득해 보이는 데...
“그래도 너무 비싸다. 나 그냥 버스 탈란다.”
“잠깐만, 그럼 일단 두사람이니까. 각자 50씩 100에 모실께”
요것봐라 흥정이 먹히네. 그럼 계속깎아 볼까?
“에이 그것도 비싸다. 너 내가 2명 더 모아올테니 4명이면 싸게 해줄래?”
“그래 4명이 합쳐서 150에 해줄께”
잽싸게 터미널 대합실로 들어서 같은 버스를 타고 왔던 중국인 커플에게 접근해서 택시 쉐어를 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탕헤르 시내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갈 계획이었다.
“쟤네들 아실라로 간데, 안돼겠다. 우리 둘이 60에 태워주라.”
“아~... 그럼 80에 가자.”
“60”
“70. 그 이하는 절대 안돼. 거기 15km 떨어지 곳이라고.”
“알았다. 70이다. 나중에 딴 말하기 없기!”
그렇게 확답을 받고는 짐을 들고 택시기사를 따라 갔다.
Round 2
택시 근처로 가는 택시 안에 뭔가 움직이고 있다! 아놔. 택시에는 이미 두명이 타고 있었다.
“야. 이미 두명 타고 있잖아. 우리 짐도 많은데 어떻게 타냐. 나 안탈래”
“아놔 이 외국놈아. 이거 원래 쉐어택시야. 원래 이렇게 가는 거라고”
“좁아서 싫어. 그럼 10깎아 주던가.”
“아. 원래 6명까지 타고 다니는 거야. 일단 타고 보슈”
라며 막무가내로 짐을 실었다. 낡디 낡은 택시 트렁크는 닫히질 않아 로프로 묶어야 했다.
“어. 맘대로 짐 싣고! 그럼 60에 가는거지?”
아무대답이 없다. 젠장 어쩔 수 없이 일단 택시에 탔다.
택시는 내가 가려는 목적지와 상관없는 항구에 들러 옆자리 손님을 내려놓고 내 숙소를 찾아 나섰다. 심지어 목적지가 어딘지 정확히 알지도 못해서 조수석에 앉은 현지인과 옥신각신하며 주소의 그 곳을 찾아갔다.
Round 3
“이보슈 외국양반. 이 근처인거 같은데 못 찾겠으니 내려서 찾아보슈.”
AirBnB는 현지 가정집의 빈방에 머무는 숙소 형태이다 보니 숙소임을 알리는 간판이 없다. 그래서 정확한 주소로 찾아가거나, 전화로 연락을 하며 집주인과 만나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주소로는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어서 전화를 하기로 했다.
“기사 아저씨, 여기 전화번호가 있으니 아저씨 폰으로 전화 한 통 합시다.”
곧 집주인 아저씨가 나왔왔다. 번지를 알아볼 수 없어서 숙소 대문 앞에서 헤매고 있었다니... 짐을 내리고 택시비로 100DH을 주고 잔돈을 받으려고 하는데 이 아저씨가 20DH만 주고 가려고 한다.
“아저씨, 아까 70에 간다고 했잖수. 잔돈으로 30을 주셔야지!”
“너 전화 썼잖아, 그거 10으로 치자”
바가지 쓰거도 억울한데 전화비까지 받으려고 하니 짜증이 확 올라왔다.
“아놔, 아저씨 택시비 속인거 다 알고 있다. 가까운 거리를 다른 손님때문에 돌아서 온거 아니냐. 그런데 전화비까지 받냐!”
한참 티격태격하고 있느니 집주인 아저씨가 나서서 택시 기사를 훈계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외부인이라도 그렇지 너무 받은거 아닌가. 그냥 50만 받고 가슈”
그렇다 택시비로 50DH도 충분히 호객님이었던 것이었다.
결국 택시 기사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조수석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는 손님을 핑계로 가버렸다. 숙소 주인아저씨와 우리는 사라져가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ㅅㅂㄹㅁ, 잘 먹고 잘 살아라. 행복하슈!”
사실 이 일화는 특별히 억울하거나 놀라운 사건이 아니라 흥정을 해야하는 나라에서는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다. 아마도 숙소가 있던 곳이 탕헤르에서 꽤 부촌이라서 넉넉하게 받아가겠다는 생각을 했으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머물었던 Omar 아저씨 집도 전혀 모로코스럽지 않은 3층짜리 저택이었다.) 그나마 모로코는 이집트나 인도에 비해서 훨씬 양호한 편이다. 가끔은 흥정을 해서 가격을 깎는 재미와 소소한 보람이 있기는 하지만, 하루에도 여러번 겪게 되면 짜증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그들의 문화이고 내가 그속에 함부로 들어온 것을...
< 작은 어촌을 연상시키는 탕헤르 구항. 지금 대대적인 공사중이니 몇년뒤에는 완전히 달라져 있겠지 >
< 최신 공항만큼이나 쾌적한 탕헤르 메드 신항 >
탕헤르를 떠나는 날 아침, 다시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야 했다. 스페인으로 가는 페리가 출발하는 신항구까지 가는 버스가 기차역 부근에서 출발하기 때문이었다. 배낭을 메고 거리에서 서있는 순간은 마치 하이에나 무리 앞에 선 사슴이 된 기분이다. 이번에는 적정 택시비를 알고 있었기에 흥정이 수월했다. 미터기 사용을 거부하는 택시와 터무니 없게 요금을 부르는 택시 몇 대를 보내고서야 간신히 택시를 탈 수 있었다. 물론 예상 택시비보다는 더 줘야 했지만,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다.
택시를 타고 탕헤르 기차역에 내리고 버스 정류장을 찾아 두리번 거렸다. 그러자 택시 기사 아저씨가 잠시 기다리라면서 여기 저기 묻더니 버스 정류장을 찾아 주고 버스 번호를 확인시켜주었다. 내심 고마운 마음이 들었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정차되어 있는 버스까지 가서 목적지를 확인하고 오더니 우리가 버스를 탈 때까지 기다렸다가 버스 기사에게 우리가 내리는 곳을 말해주기까지 했다. 그 택시 기사 덕분에 모로코를 떠나는 날 그동안 모로코 택시에게 서운했던 점이 많이 누그러들었다. 어딜가나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 법이다. 여행 중에 만나는 일부 사람들로 국가 전체를 매도할 수는 없는 법, 다만 충분한 표본집단을 확보하기엔 여행자의 시간이 넉넉치 않을 뿐이다.
*** 탕헤르 여행 Tips ***
Tip 1. 모로코에는 크게 두가지의 택시가 있다. 장거리 운행이 가능한 그란데 택시와 짧은 거리에 많이 이용하는 쁘띠 택시. 그란데 택시의 경우 합승이 일반적이며 장거리 이동이다 보니 주로 흥정을 통해 가격을 결정한다. 쁘띠 택시는 대부분 미터기를 사용하지만 정체가 있는 구간의 경우 흥정으로 가격을 정하고 가기도 한다. 두 택시를 구분하는 법은 색깔. 그란데 택시는 어느 도시나 흰색, 아이보리색의 세단이고, 쁘띠 택시는 해치백이 많고 도시마다 고유의 색을 가지고 있다. 빨간색 (마라케시, 페스, 카사블랑카), 파란색 (라바트, 쉐프샤우엔, 탕헤르)
Tip 2. 탕헤르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페리는 탕헤르 메디나 앞에 있는 구항과 탕헤르 메드(Tangier MED)에 있는 신항 두군데에서 출발한다. 탕헤르에서 출발한 배는 스페인의 타리파(Tarifa)에 도착하고, 신항에서 출발하는 배는 알헤시라스(Algesiras)로 향한다. (구항 → 타리파 : 370DH, 신항 → 알헤시라스 : 200DH, 2015년 10월)
Tip 3. 신항이 있는 탕헤르 메드까지 가는 로컬버스는 탕헤르 기차역 광장에서 수시로 출발한다. 버스 번호는 13번이고, 가격은 7DH이다. (2015년 10월) 셔틀버스와 달리 신항 내부까지 들어가지 않고 길 건너편에 세워주니 현지인들을 따라서 눈치껏 내리자.
Tip 4. 사실 탕헤르는 여행지로는 큰 매력이 없다. 차라리 버스를 타고 1시간 떨어져 있는 아실라를 다녀오자. 해마다 세계 벽화 축제가 열리는 아실라는 메디나 내부가 화려한 벽화로 가득하다. 그 밖에도 택시로 20여분 떨어진 곳에 헤라클레스의 동굴이라는 해안 침식 동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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