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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이집트] 다합 : 배낭여행자의 쉼표




다합(Dahab)은 오래전부터 배낭여행자들에게 굉장히 유명한 여행지였다. 다합은 태국의 카오산, 파키스탄의 훈자, 인도의 바라나시, 네팔의 포카라 등과 함께 장기 배낭 여행자들이 한 번 머물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일명 ‘여행자의 블랙홀’ 중에 한 곳이다. 나도 다합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는 것이 정신차리고 보니 8일을 머물렀다. (다합에서 장기여행자가 8일 만에 떠난건 비교적 짧게 머문 편이다.) 


앞 포스팅에서 썼듯이 요르단에서 페리로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지칠대로 지친 상태로 다합에 도착했다. 배낭여행자들이 한 번 오면 쉽게 빠져나기지 못한다는 매력적인 여행지 다합에 도착했는데도 얼른 침대에 눕고 싶다는 마음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쉬고 일어나서 돌아본 다합의 첫인상은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낮 시간의 날씨가 워낙 더워서인지 거리는 한산한 분위기였고 레스토랑이나 바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해가 지고 나서는 조금 활기차지긴 했지만 카오산의 화려한 분위기와는 차이가 있었다. 조금 지나고 나서 느꼈지만 다합은 다합만의 다른 매력이 있었다.


< 낮에는 평화로운 다합의 거리. 밤에는? >

  

< 보이는 해변이 전부라도 할 만큼 다합은 작고 아담한 동네 >



앞에서 말한 ‘여행자의 블랙홀’들의 특징이 있다. 공통적으로 그 곳에 숙소를 잡고 하루 이틀 지나다 보면 딱히 하는 일도 없이 시간이 잘 간다. 특별히 볼 만한 명소가 있어서 바삐 돌아다닐 일도 없어서 점심이 다 되도록 늦잠을 자고 일어나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조용히 책을 읽다가 저녁이 되면 술 한잔과 함께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일주일이 훌쩍 지나게 된다. 다합도 비슷했다. 느즈막히 일어나 점심을 먹고 해변에 있는 바에 자리를 잡고 음료수를 마시며 책을 보다가 스노클링을 하는 것을 반복하다 저녁을 먹고 산책하는 것이 하루 일과인데 의식하지 않으면, 이런 한량같은 일상에 빠져 날짜가 지나는 것을 느낄 수 없게 된다.

 

< 맑고 잔잔한 홍해는 수중스포츠의 천국 >

 


사실 다합은 여행자들이 느긋하게 늘어지는 여행지라서보다는 홍해의 아름다운 다이빙 포인트로 더 유명한 곳이다따뜻하고 맑은 홍해에는 다양한 산호와 열대 물고기들이 많아서 스쿠버 다이빙의 최적지로 손꼽히는 곳이다게다가 세계 3대 블루홀 중에 하나가 다합에서 30분 거리에 떨어져 있고 캐년을 비롯한 다양한 지형의 다이빙 포인트들이 즐비하다그래서 다합에는 어디서나 수트와 탱크를 메고 다니는 다이버들을 쉽게 볼 수 있고다이빙샵도 꽤 많다.


아름다운 휴양지를 여행하다가 바다를 좀 더 즐겨보고 싶은 마음에 재작년 인도네시아 길리트라왕안에서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 라이센스를 땄다하지만 오픈워터 만으로는 다양한 다이빙 포인트를 즐길 수 없었기에 어드밴스드 라이센스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오픈 워터 교육을 받을 때는 한국인 강사나 교재가 없는 지역이라 어쩔 수 없이 영어로 수업을 받았었는데, 목숨이 오고가는 내용인지라 집중해서 열심히 수업에 임했지만 가끔씩 나오는 전문용어에 어려움을 겪었었다그리고 다이빙 후에 서로 감상을 주고 받는 시간에도 서양 여행자들 사이에 쉽게 섞이질 못해서 아쉬움이 많았었다그래서 이번에는 한국인 강사와 강습생들과 함께 교육을 받기 위해 다합에서 어드밴스드 교육을 받았다역시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즐기는 다이빙은 몇 배는 더 재미있었다게다가 같이 교육을 받은 분들도 장기 여행자들이라서 서로 통하는 부분도 많고 정보도 교환할 수 있었고여행 출발 후로 늘 아내하고만 대화를 하다가 오랫만에 새로운 상대를 만나자 신이 났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스쿠버다이버 어드밴스드 교육을 받고 드디어 그 유명한 블루홀에 입수했다. ‘El bell’로 불리는 수직 협곡을 따라 입수하여 산호와 열대어가 가득한 수직벽을 오른편에 두고 따라 이동하다가 ‘Saddle’이라고 부르는 블루홀의 경계를 넘어서 원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눈 앞에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검은 심해가 기다리고 있었다보면서 믿기지 않는 환상적인 광경을 어찌 미천한 글솜씨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블루홀 가운데에는 많은 프리다이버들이 설치된 로프를 이용하여 블루홀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그 막막한 어둠속으로 홀로 내려가는 프리다이버들을 바라보며 인간의 도전정신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종종 블루홀에서 목숨을 잃는 다이버들이 있어서 블루홀 주변에는 그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여럿 보인다.)


 

 < 세계 3대 블루홀 중에 하나라는 다합 블루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 부력조절기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전형적인 초보의 포즈 >

 

다합은 사람들을 눌러앉히고 깊은 바닷속의 속살을 보여주는 신비로운 여행지였다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이 잔잔하고 맑은 홍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여행자의 블랙홀이 된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