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수도는? 무심결에 카사블랑카라고 답하는 사람이 꽤 많지만, 정답은 라바트(Rabat)이다. 카사블랑카와 페스, 마라케시의 유명세에 비해 잘 알려져있지 않고, 여행자들도 많이 찾지 않는 도시이기에 나 역시 큰 기대없이 그냥 마라케시에서 페스로 지나가는 길에 라바트를 들렀다.
역시 아무기대 없이 찾아 간 곳에서는 의외의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 기대 수준이 낮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기대를 하고 찾아 갔던 카사블랑카에 비해 훨씬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 마라케시의 메디나에 비할 바는 못하지만, 미로같은 골목길로 주택과 수크가 경계가 없이 얽혀있고 어딜봐도 사람 사는 냄새가 풀풀나는 정감있는 구시가지가 여행자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지저분하긴 했지만 등대가 있는 해변은 대서양으로 향한 멋진 절벽으로 시원한 볼거리를 주었고, 프랑스 식민시기에 요새 역할을 했었던 카스바(kasbah)에는 흰색과 진파랑으로 칠해진 마을이 마치 지중해의 예쁜 마을을 떠올리게 했다. 역시 특별한 것을 보고야 말겠다는 목적의식을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하듯이 돌아다니게 되면 보이는 모든 것이 익숙하면서도 특별해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어떤 시선으로 보는 가에 따라 내가 매일 걷는 출근길도 새로움과 놀라움이 가득한 여행지가 될 수도 있으리라.
< 라바트 던전 메디나 입구 >
< 멋진 경치에도 불구하고 관리 상태가 엉망이었던 라바트 해변 >
< 산토리니 아닙니다. 라바트 카스바의 흔한 골목입니다. >
처음 라바트역에 도착해서 거리로 나서자마자 이전에 머물었던 마라케시와 사뭇 다른 풍경에 살짝 놀랐다. 시원하게 뚫린 대로와 길게 늘어서 야자 가로수, 반짝반짝 빛나는 신형 트램까지 마치 유럽의 도시에 와있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프랑스 기업인 호텔 체인과 대형 마트 등도 쉽게 볼 수 있고 작은 호텔이나 레스토랑의 주인도 프랑스인인 경우가 많았다. 프랑스 식민 지배는 1956년에 끝이 났지만, 어디서나 아랍어 다음으로 적혀 있는 프랑스어와 가게에 들어서면 ‘봉주르~’로 인사하는 사람들, 프랑스식 대중교통 시스템 등등 아직도 프랑스령에 속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도 식민지배를 받은 적이 있지만,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쓰고 않는 것과 대비하면 약간 의아했다. 카사블랑카 여행기에서 소개했던 하산 2세 모스크 역시 국가적인 상징물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건축가의 손을 빌려서 설계했다고 하니, 이들에게 프랑스는 과거의 점령국보다는 현재의 선진국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 어느 것이 파리의 트램이고, 어느 것이 라바트의 트램일까요? >
모로코에 주말을 보내면서 신기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슬람의 휴일을 따라 금요일, 토요일을 쉬는 사람들과 프랑스의 휴일을 따라 토요일, 일요일을 쉬는 사람이 있어서 마치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는 주 4일 근무하는 국가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처럼 모로코는 이제 겨우 3도시를 방문했고 며칠 지내지도 않은 나에게 정체성이 애매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랍어로 울리는 아잔을 들으면서 프랑스어로 대화를 하는 사람들의, 아프리카 연합을 탈퇴하고 유럽 연합에 가입을 시도했던 역사의 모로코는 이슬람교의 아랍문화, 유목 생활을 하는 베르베르인의 전통, 유럽 식민지의 영향이 혼재되어 다양한 색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여행지이다.
*** 라바트 여행 Tips ***
Tip 1. 라바트는 버스보다는 기차가 도심 접근성이 좋다. Rabat Ville 역에 내리면 바로 앞에 트램이 정차하기 때문에 이동이 편리하다. 트램 티켓은 정류장에서 구입 가능하고 1시간 동안 사용가능하다.(1회권 6 DH, 2015년 9월) 환승은 가능하나 출발 방향의 역방향으로 이동은 불가! 트램에 타자마자 곧바로 타임스탬프를 찍자. 수시로 티켓 검사가 있으니 요행을 바라지 마시라.
Tip 2. 라바트 카스바의 메인 골목의 끝에 경치가 끝내주는 전망대가 있다. 멀리 살레까지 보이니 놓치지 말자.
Tip 3. 라바트에서 트램 1호선을 강하구를 건너면 살레(Sale)에 갈 수 있다. 살레에도 멋진 메디나와 흥미진진한 수크가 있으니 여유가 있으면 가보자.
Tip 4. 라바트 외곽에 울타리가 없는 특별한 동물원이 있다. 동물원을 좋아하진 않아서 가보진 않았지만, 꽤 괜찮다고들 한다. 트램으로 갈 수는 없으니 쁘띠 택시를 이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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