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약간 걱정스러웠던 경로가 요르단에서 이집트로 넘어가는 구간이었다. 이집트는 2011년 이집트 혁명 이후로도 여전히 정세가 불안했고, 시나이반도에는 반정부 세력들이 여전히 폭탄 테러나 반정부 시위가 진행중이다. 게다가 작년에는 이집트 국경도시 타바에서 버스 폭탄 테러로 한국인 관광객 여럿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뒤로 시나이반도 북부는 외교부에서 여행금지지역으로 지정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IS까지 설치고 있으니... 그런데 요르단에서 이집트로 넘어가려면 시나이반도를 지나가지 않을 수가 없고 오래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다합을 눈앞에서 포기할 수 없어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 요르단의 아카바에서 이집트 누웨이바(Nuweiba)로 향하는 페리를 탔다.
< 요르단에 입국하는 날부터 매일 외교부로부터 안부 문자를 받았다. >
아카바에서 다합으로 가는 길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이동이었다. 페트라에서 오전에 출발해서 아카바에 12시쯤에 도착했다. 암만과 페트라까지는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고 낮에도 그늘에서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아카바는 정말 미친듯이 더웠다. 잠깐 스쳐지나 가는 곳이다 보니 부지런히 돌아다닐만도 하지만 너무 더워서 오래 앉아있어도 눈치주지 않는 맥도널드 구석에서 해가 떨어지길 기다리다가 이집트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페리 선착장으로 갔다. 10 JD (약 16,000원)씩이나 하는 출국비까지 냈건만, 국제선 페리 터미널의 시설은 형편없었다. 선착장에 있는 화장실에는 소변기가 박살나 있었고 전등도 없어서 스마트폰을 입에 물고 볼 일을 봐야 할 정도 였다. 게다가 요즘 중동 정세가 안 좋다 보니 여행자는 나와 아내 그리고 암만에서 유학생활 중이라는 벨기에 청년까지 셋이 전부였고, 수백명의 현지인들은 그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계속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밤 12시에 출발한다는 배는 새벽 1시가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노란 가로등 몇 개에 의지해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은 지쳐서 플렛폼 여기저기에 쓰러져 잠들었다. 깨어있기도 힘들고 잠들 수도 없는 상황에서 짜증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무렵, 드디어 탑승 방송이 나왔다. 각자의 짐은 커다란 컨테이너에 아무렇게나 던져 넣고 길게 줄을 지어 페리를 향해 걸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마치 피난민처럼 줄을 서서 탑승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우리 부부를 불러내더니 제일 먼저 탑승을 시켜줬다. 이제와서 무슨 배려인가 싶었는데 외국인이라서 배려해준게 아니라 여자를 남자들 사이에 줄세우지 않는게 이 동네 룰이라서 그렇단다. 덕분에 편하게 배에 올라탔고 다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배는 이집트 누웨이바 항으로 출발했다.
< 아카바 페리 선착장, 오른쪽에 요상하게 엎드려 자는 벨기에 청년 요하네스 >
< 요르단 아카바에서 이집트 누웨이바로 떠나는 나름 국제선 페리 >
배안에서는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몇 시간이나마 눈을 붙이려고 했지만, 냉장고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쉴새없이 틀어놓은 에어컨 때문에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그나마 바람이 적게 오는 곳을 찾기 위해 이곳 저곳으로 돌아다녀도 추위는 마찬가지 였다. 낮에 아카바에서 더위로 고생했었기에 긴옷은 모두 메인배낭에 집어넣고 컨테이너에 던져놨는데, 이제와서 찾을 수도 없으니 후회해봐야 소용없었다. 그렇게 뜬 눈으로 덜덜 떨면서 밤을 새고 누웨이바 항에 도착했다.
< 아, 이제 사진만 봐도 춥다. >
수백명이 탄 페리선에 외국인은 셋 밖에 없었기에 입국심사관은 우리 셋을 집중 관리해주었다. 방송으로 찾을 필요도 없이 동양인은 우리 뿐이니 직접와서 여권을 걷어갔고, 누웨이바 항에 도착해서는 이집트 여행경찰에게 우리를 인계해줬다. 군사정권의 이집트답게 고압적인 여행경찰은 시종일관 우리를 심문하듯 대하면서 이리 저리 끌고다니다가 간신히 입국도장이 찍힌 여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누웨이바에서 다합으로 가는 유일한 버스는 떠나버렸고 우리는 비몽사몽한 정신에 젖은 솜처럼 축처진 몸으로 길에 주저앉았다.
< 이집트 누웨이바 항 >
다행스러운 것은 어제 저녁부터 묘한 동지애로 일행이 된 벨기에 청년이 아랍어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누웨이바 항 앞에 있는 야매 사설택시 기사들과 흥정을 해봤지만, 각자 커다란 배낭을 메고 어떻게 든 택시를 잡아야 하는 우리가 약자의 입장이라서 흥정이 쉽지 않았다. 여차하면 부르는대로 타고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택시 기사들의 터무니 없는 가격에 짜증이 난 아내가 자신 직접 돌면서 기사들을 모아와서 흥정을 다시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어디서 경찰을 데려와서는 이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운행하는 것이 맞냐고 따지니, 경찰은 웃으면서 ‘요즘 여행자가 줄어서 택시가격이 많이 올랐다. 저 정도면 적당한 가격이니 왠만하면 그냥 타고 가라’고 했다. 그렇게 흥정은 마무리 되었고 우리는 몸도 마음도 지친 채로 누웨이바를 떠나 다합으로 향했다.
*** 요르단에서 이집트로 이동하기 Tips ***
Tip 1. 아카바에서 누웨이바로 가는 페리는 매일밤 자정에 출발하는 1편 뿐임. 요금 70USD (2015년 5월 기준)
Tip 2. 페리 선착장은 아카바 시내에서 10km 정도 떨어져 있음. 택시로 이동해야 함. 5JD 정도면 적당함.
Tip 3. 페리 티켓은 선착장에서 살 수도 있지만, 아카바 시내에 있는 AB Ferry 사무실에서 구입할 경우 짐 보관을 부탁할 수 있다. 위치는 아카바 중앙우체국 뒷편 주차장 부근.
Tip 4. 페리 선착장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터미널 건물에 매점이 있음. EGP, JD, USD를 모두 받음. 정가제로 운영하며 외부보다 약간 저렴함. (컵라면 0.5JD, 오렌지 쥬스 0.6JD)
Tip 5. 페리 객실은 냉방이 과해서 추울 수도 있으니 긴팔 필수. 옥상 데크는 그나마 춥지는 않으나 담배연기와 배에서 나오는 매연을 감수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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