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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모로코] 쉐프샤우엔 : 먹고 걷고 마셔라

 

페스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작은 산골마을인 쉐프샤우엔(Chefchaouen)은 모로코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교통편도 좋지 않고, 특별한 문화 유산이 있는 것도 아닌 이곳을 찾는 이유는 온통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는 신비로운 마을 풍경 때문이다.

 

무슬림을 상징하는 색은 녹색인데 왜 하필 파란색의 도시일까? 쉐프샤우엔은 1930년대에 스페인에서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유대인들이 산좋고 공기좋은 이곳에 정착하고 유대인의 색인 푸른색으로 집을 칠하기 시작하면서였다. 그 이후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어 유대인들이 떠났지만, 여전히 그들은 파란색으로 집과 길을 칠하면서 많은 여행자를 불러모으고 있다.

 

<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골목길 >

 

< 이 사진만 보고 모로코를 떠올릴 수 있을까? >

 

쉐프샤우엔에서는 메디나 안의 파랗게 칠해진 미로를 헤매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아니 모로코 어느 곳을 가도 미로같은 메디나 안을 걸으면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는 것과 카페에서 민트티를 마시면서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는 것이 여행의 전부이다. 사하라 사막 투어나 아틀라스 산맥 트래킹을 하지 않는다면 특별한 유적지나 휴양지가 없는 모로코에서는 사람 구경과 맛집 발굴이 여행자의 일과이다. 느즈막히 일어나 조용한 중정에 앉아 민트티를 마시고 리아드를 나서서 미로 속을 해메다가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나는 식당에 자리잡고 따진 한그릇 먹고서는 주스나 길거리 음식을 사먹고 과일 한 봉지 사서 숙소로 돌아오는 일과. 그냥 조용하게 그들의 일부가 되어 흘러가는 것이 모로코를 여행하는 법이었다. 굳이 목적지를 정할 필요도 동선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숙소 문을 나서면 그곳이 바로 목적지가 되는 곳. 모로코

 

< 아틀라스 산맥이 배경처럼 둘러싸고 있는 쉐프샤우엔 >

 

< 마을길을 물들이는 천연 염료들 >

 

< 모로코에는 유난히 섹시한 고양이들이 많았다. >

 

< 마을에서 유일하게 녹색으로 칠해진 코란 학교, 지금은 영묘로 사용중 >

 

모로코의 다른 도시에 비해 규모가 작은 쉐프샤우엔은 파란색의 길을 걷다가 곳곳에 숨어있는 식당을 찾아 맛보는 재미로 돌아다녔다. 유목민족인 베르베르인의 전통과 이슬람 문화, 식민통치를 했던 프랑스의 영향으로 모로코는 음식이 굉장히 다양하다고 하는데 막상 식당에 들어서면 따진, 꾸스꾸스, 케밥으로 정리된다. (사실 여행다니면서 음식의 다양성은 우리나라 김밥천국만한 곳을 못 봤다.)

 

그중에 모로코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따진 요리이다. 따진은 고깔모양의 뚜껑으로 덮어서 요리를 하는 뚝배기 그릇을 말하는 것인데, 그 안에 고기, 채소 등과 향신료를 적절히 넣고 찌는 건강식이다. 이때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비프 따진, 치킨 따진, 생선 따진 등 셀 수 없이 다양한 요리가 된다. 그냥 주 재료 이름 + 따진이라고 하면 음식이름이 된다. 따로 물을 넣지 않고 숯불에서 은근하게 찌는 과정에서 재료의 수분이 나오는 것을 이용하는 방식이라 재료의 본연의 맛과 향이 잘 살아있어서 입에 아주 잘 맛았다. 특히 소고기 따진은 우리나라의 갈비찜과 거의 비슷한 맛이라서 모로코에서 추석을 맞이한 나에게 명절 음식을 대체해 주었다.

 

< 뭐가 들어가도 상관없다. 모로코 대표요리 따진 >

 

따진과 함께 모로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가 바로 민트티이다. 뜨거운 물에 신선한 민트잎을 넣고 설탕을 듬뿍 넣어서 먹는 데, 민트향이 설탕의 달콤함에 녹아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맛이다. 중동 지방의 이슬람 국가에서는 진한 커피나 홍차를 하루 종일 입에 달고 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모로코에서는 어디서나 민트티를 마시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람이 모이는 광장에는 어김없이 카페가 있는데 식당보다 카페가 월등히 많아서 혹시 식당인가 해서 들어가보면 카페인 경우가 많아 식당 찾기의 어려움을 더해주었다.

 

그 카페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항상 남자들이 모여앉아 민트티를 홀짝 거리고 있다. 신기하게도 여자 손님들이 모여 수다를 떨며서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음주를 금하는 이슬람 국가이다 보니 카페에서 민트티를 마시며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는 아저씨들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삽겹살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얘기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문화의 차이가 삽겹살과 소주를 민트티로 바꿔놓긴 했지만, 아마도 우리의 술자리와 비슷한 얘기들이 오고가지 않을까 싶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도 충분히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고,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데 우리는 그동안 너무 술에 의존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술의 힘을 빌어서 뭔가를 잠시 잊고 싶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나는 술이 없는 나라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어쩌면 애초에 술의 힘이 필요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원치 않는 술자리에 참석하는 불편함과 숙취로 고생하는 출근길은 없었으리라.

 

'자~ 오늘도 수고했고 퇴근 후 정문 앞 카페에서 민트티 한잔 합시다.'

 

< 달콤하고 향긋한 민트티 >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시원한 맥주가 몹시 그립기는 하다. 마치 내 피의 아주 소량 섞여있는 알콜이 계속 술을 부르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제 모로코를 끝으로 당분간 이슬람 국가를 만날 일이 없으니 이 갈증도 얼마 남지 않았다.


 

***  쉐프샤우엔 여행 Tips ***


Tip 1. 기차가 다니지 않는 쉐프샤우엔은 버스로만 갈 수 있다. 인기있는 여행지이다 보니 버스는 항상 만석이다. 미리미리 예약하자. 쉐프샤우엔에 도착하면 곧바로 떠나는 버스표를 예매하는 센스.

 

Tip 2. 쉐프샤우엔에서 탕헤르나 테투안으로 가는 버스는 반드시 오른쪽에 앉자. 쉐프샤우엔에서 테투안까지 가는 길의 오른쪽으로 웅장한 아틀라스 산맥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게다가 해를 피할 수 있어서 커튼을 열고 차창 밖을 감상할 수 있다. 반대로 탕헤르에서 쉐프샤우엔으로 오는 버스는 왼쪽.

 

Tip 3. 쉐프샤우엔의 메디나는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메디나 안은 계단길이 많다. 게다가 미로처럼 복잡해서 초행길에 숙소찾기가 쉽지 않다. 메디나 밖에 숙소를 잡기를 추천한다. 워낙 작은 동네라 숙소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

 

Tip 4. 왠만하면 식당을 추천하지 않는데, 쉐프샤우엔에서 숨은 보석을 발견! 메디나 입구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문의하면 'Bab ssour'라는 유명한 식당을 추천하면서 명함을 준다. (검색해보면 후기도 많고 트립어드바이저에도 2위에 랭크되어 있으나, 난 그저 그랬다.) 거기에 있는 약도를 보고 식당을 찾아가 식당의 길건너편에 있는 주스 가게에서 아보카도 주스를 주문하자. 단돈 10 DH에 놀라운 맛을 경험할 수 있다.

 

Tip 5. 스페인에 넘어가지 전에 물가 싼 곳에서 이발이나 하자는 생각에 Bab souk 근처의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다. 단돈 10 HD(약 1250원, 2015년 10월)에 이발과 면도까지 했다. 장기 여행자라면 이발은 모로코에서 꼭 하고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