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미로. 모로코 페스(Fez)를 소개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지금의 수도인 라바트 이전에 모로코의 수도였던 페스의 메디나는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도시 전체가 복잡한 미로처럼 만들어져 있다. 직경 2km 남짓의 성곽안에 대략 9000여개의 길이 얽혀있어서 골목길을 이으면 300km에 달한다고 한다. 페스에서 태어나서 자란 현지인들도 자신이 사는 주변을 벗어나면 길을 잃는다고 하니, 페스에서는 길 잃지 않으려고 신경쓸 필요없이 지도를 내려놓고 느긋하게 미로 속을 헤매는 것이 페스를 즐기는 방법이다.
일명 블루게이트라고 불리는 Bab Boujeloud에서 게임은 시작된다. 황토로 지어진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그 속을 알 수 없는 메디나는 블루게이트를 통과하면 외부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하루 종일 매케한 연기를 피우며 고기와 채소를 굽는 로컬식당을 지나면 우리나라 5일장 같은 모습의 재래시장이 길게 이어지고 그나마 메인로드라고 부를 수 있는 Rue Talaa kibra 길을 따라 가죽공예점, 카페트 가게, 잡화점 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길은 끊임없이 갈라졌다가 합쳐지고,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지면서 점점 알 수 없는 곳으로 여행자를 이끈다. 이 길인가 싶어서 계속 들어가면 어김없이 막다른 골목이 나오고, 분명히 해를 등지고 계속 직진했는데 방금 전 그자리로 돌아오기도 하는 미로 속에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 메디나로 들어가는 블루 게이트, 미로 탐험의 출발점 >
< 볼거리 가득한 상점들 덕분에 미로 탐험은 심심하지 않다.>
여행을 한지 6개월이 되어 길찾기는 자신있다는 생각에 자신만만하게 미로속으로 뛰어들었지만, 길을 걸을 수록 내가 가는 이 길에 대한 확신은 점점 약해지고 자꾸 누군가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바른 길이라고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갈림길을 하나 둘씩 지나갈 때마다 방금 지나친 그 길이 맞는 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막연하게 대략적인 방향만을 떠올리며 때로는 북으로 때로는 남으로 돌고 돌아서 목적지로 조금씩 다가가는 과정이 흡사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과도 같았다. 자신만만하게 찾아 들어갔던 길이 막다른 길임을 확인하고 돌아설 때는 살다가 겪었던 실패의 순간이 떠올랐고, 복잡한 미로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으면 어딘선가 현지인이 나타나 방향을 알려줄 때마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방황할 때 나에게 방향을 알려주신 인생 선배들이 떠올랐다. 페스가 세상이고, 세상이 페스였다. 확실한 것은 모든 길은 이어져 있어서 결국은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는 점과 그 길이 꼭 최단 거리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조금 헤매도 괜찮다. 여기는 미로니까.
< 어느 쪽으로 가던 상관없다. 어짜피 길은 다 통할테니... >
복잡한 페스의 미로속에는 놀라운 보물들이 많다. 모로코의 수도였던 시절의 왕궁, 세계 최초의 대학인 알 카로인 대학, 복잡한 속세 속의 오아시스 같은 모스크들, 숨은 보석 같은 공예품 가게, 저렴한 가격에 기가 막힌 맛을 선사해 주는 로컬 식당까지 미로 곳곳에 미션 보너스처럼 숨겨져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멋진 볼거리이자 가슴 먹먹한 삶은 현장이 곳, 바로 가죽 염색 공장인 페스의 테너리(Tannery)이다. 테너리 근방에 가면 이미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나를 안내하겠다고 앞을 다퉈 달려드는 가이드들을 만나게 된다. 아무리 근처에 있다고 한들 테너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가이드들에게 작은 팁을 주고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1000여 년의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페스의 가죽 염색 공장은 비둘기를 비롯한 동물의 변을 이용하기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가득하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에 12시간을 차가운 염색물 속에 몸을 담그고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노동의 숭고함과 장인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테너리 주변을 둘러싼 건물 위로 민트잎으로 코를 막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과 그들을 의식하지 않은체 묵묵히 가죽을 주무르는 염색공을 보고 있자니 누군가의 생계를 위한 치열한 삶의 현장이 누군가에게는 신기한 볼거리가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 노동의 숭고함을 느낄 수 있는 페스 테너리 >
길을 알 수 없는 복잡한 페스의 미로 속에는 왕궁도 있고 테너리도 있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왕궁으로 가는 길인지 테너리로 가는 길인지 말해주는 현지인은 어디 있을까?
*** 패스 여행 Tips ***
Tip 1. 페스 기차역은 메디나와 약 3km 정도 떨어져 있다. 쁘티 택시로 10 ~ 15 DH 정도면 적당하다. (2015년 9월) CTM 버스터미널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에 각각 있다. 구시가지에서 출발하여 신시가지를 거쳐서 시외로 나간다. 버스표는 어느 곳에서 사던지 상관없다.
Tip 2. 복잡한 메디나에 지쳤다면 블루게이트에서 직진하여 성문 밖으로 나가면 Jardin Jnan Sbil이라는 근사한 공원이 있다. 간식을 준비해서 산책도 하고 벤치에서 경치도 감상해보자.
Tip 3. 블루게이트에서 버스터미널 쪽으로 나가서 로터리에서 언덕으로 나있는 대로를 따라 걸어올라가면 Borj Nord라는 성문이 나온다. 페스 메디나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있으니 시간내서 가볼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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