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자동차 여행을 마치고 마르세유 공항에서 악명높은 라이언 에어를 타고 모로코 마라케시(Marrakesh)로 넘어갔다. 마르세유에서 마라케시로 이동하는 항공권은 여행 출발 전에 미리 예약을 해서 일인당 약 50유로의 저렴한 가격에 결제할 수 있었지만, 아무런 의심없이 체크인 수화물을 15kg으로 결정해 놓은 덕분에 공항 한가운데에서 나의 배낭은 가혹한 무게 감량을 당해야 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에 라면, 고추장 같은 한식 재료를 안 챙겨와서 몹시 아쉬웠던 기억에 유럽을 떠나기 전에 고추장과 라면, 고춧가루를 알뜰하게 포장했건만, 마르세유 공항 쓰레기통에 남겨지게 되었다. 야속한 라이언에어, 1kg 초과당 10유로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수화물은 2.5kg 초과했다. 다행히 우리의 노력이 가상했던지 카운터 직원이 눈감아 준 덕분에 추가 비용 없이 탑승할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 지브롤터 해협만 건너면 모로코이기에 유럽에서 온 여행자가 꽤 많았다. 그들 틈에 껴서 1시간을 넘게 줄을 서서 입국 심사를 마치고 모로코 땅을 밟았다. 공항에서 곧바로 제마 엘프나(Jamaa El Fna)광장 근처에 예약해 둔 숙소로 찾아갔다. 제마 엘프나 광장은 마라케시 메디나 중심에 있는 거대한 광장으로 낮에는 뱀쇼, 원숭이쇼 등으로 밤에는 먹거리 야시장으로 항상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다. 방콕의 카오산로드, 델리의 파하르간지와 같이 마라케시를 찾는 모든 배낭여행자들이 여행을 시작하고 끝내는 곳이 이곳이다. 광장에서 미로같은 메디나 안을 꼬불꼬불 해멘 끝에 예약한 리아드에 도착했다. 모로코의 전통 가옥인 리아드는 허름한 골목길에 조그만한 나무문일 뿐인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파란 하늘이 보이는 중정과 화려하게 꾸며진 내부에 깜짝 놀라게 된다. 대문 밖은 구글맵도 포기한 좁고 꼬불꼬불한 미로에 온갖 사람들과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뒤섞인 재래시장인데, 문 하나 사이로 평온하고 아늑한 정원이 꾸며져 있으니 마치 다른 차원의 문을 열고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 곳곳에는 많은 재미가 숨겨져 있는 제마 엘프나 광장 >
<저렴한 먹거리가 가득한 제마 엘프나 광장 야시장 >
< 마라케시 메디나의 수크 >
< 수크 한가운데 있던 내가 머문 리아드 >
모로코에서 메디나라고 불리는 성벽 안 구시가지에는 광장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큰 재래시장(Souk)가 자리잡고 그 주위로 미로같은 골목길로 붉은 색의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미로 속을 헤매다 보면 곳곳에 모스크와 목욕탕(Hammam)이 나타나고 때로는 그림같은 정원과 궁전도 나오는 신비로운 곳이다. 그래서 마라케시에서는 할 일은 그냥 메디나 안을 헤매다가 밤이 되면 야시장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 전부이다.
< 입셍로랑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마조렐 정원 >
< 제마 엘프나 광장 건너편의 쿠투비아 모스크 >
<주의> 아래 내용에는 혐오스러울 수 있는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착한 다음날 아침, 리아드 밖을 나서자마자 놀라운 광경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거리 곳곳에서 나무로 불을 지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죽은 양의 머리를 굽고 있었고, 약간 구석진 곳에서는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양의 머리를 댕강 자르는 놀라운 일들이 여기저기 벌어지고 있었다. 유럽에서 넘어온지 하루만에 이런 일들을 보고 있자니 ‘아, 컬쳐 쇼크라는 단어는 이럴 때를 의미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거리를 걷은 내내 나무와 함께 양머리가 타는 냄새를 맡고 방금 벗겨진 양가죽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모습을 하루 종일 보게되자 오늘이 심상치 않은 날임이 느껴졌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이둘 아드하(Idul Adha)라는 이슬람교의 중요한 명절이라고 한다. 어쩐지 거리의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았더라니...
< 거리 곳곳에서 구워지고 있던 양머리와 다리들 >
< 넓은 광장 주변에는 어김없이 쌓여있던 양가죽들 >
이둘 아드하는 자신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아브라함에게 신이 양으로 대체한 것을 기리는 희생제의 날이다. 이날은 거리 곳곳에서 양이나 염소를 도살하고 1/3은 자신이, 나머지는 주변사람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는 의미있는 날이다. 이둘 아드하는 라마단을 끝마치는 것을 기념하는 이둘 피트르(Idul Fitir)로 부터 정확히 70일이 지난 이슬람력 12월 10일인데, 그게 2015년에는 09월 24일이었던 것이다. 라마단 이후 70일간 성지 순례를 마치고 마지막 의식으로 제물을 바치는 날인데, 신기하게도 나의 여행일정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라마단 기간에 터키를 여행하고 이슬람권을 떠나나는 날이 바로 이둘 피트르 였고, 70일간 유럽을 여행하고 다시 이슬람권인 모로코로 돌아온 날이 이둘 아드하라니 이게 무슨 우연인가! 정녕 나도 제물을 바쳐야 하는 건가?
어쨌든 의도치 않게 이슬람교의 가장 중요한 명절 둘을 직접 보게 되어 이슬람교에 대해 좀 더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IS가 세계적인 이슈를 일으키고 그 전에도 십 수년간 공공의 적이었던 알카에다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이슬람교가 위험한 종교로 치부되고 있다.(걔네들은 위험한 게 맞는 듯) 물론 아직도 1400여년 전에 쓰여진 꾸란에 얽매여 있는 답답함이 있긴 하지만, 종교와 삶이 밀접하게 일치된 삶을 사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숙연해진다. 종교는 우리가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듯 하다.
*** 마라케시 여행 Tips ***
Tip 1. 숙소 위치 선정 기준은 무조건 제마 엘프나 광장과의 거리가 1순위. 버스를 타던 택시를 타던지 제마 엘프나 광장에서 내려서 걸어야 한다. 그리고 마조렐 정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관광 명소도 제마 엘프나 광장을 중심으로 돌아다닐 수 밖에 없다.
Tip 2. 광장 야시장에서 식사를 할 때는 자리를 잡기 전에 메뉴와 음료 등의 가격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들어가자. 가게마다 1인분 양의 차이가 있으니 지나가면서 먼저 앉아있는 사람들의 테이블을 슬쩍 봐두자.
Tip 3. 제마 엘프나 광장에서 공항, 기차역, 버스 터미널까지의 거리는 비슷비슷하다. 적정 택시 요금은 20 DH 정도이니, 미터기를 켜고 가길 요구하던지 적당한 선에서 흥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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