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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불가리아] 플로브디프 : 역사보다 오래된 도시

 

아무런 계획없이 돼지고기를 먹겠다는 생각으로 충동적으로 온 불가리아였기에 소피아에 이어 찾아간 플로브디프(Plovdiv)에 대해서도 전혀 정보가 없이 도착했다. 소피아에서 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플로브디프 북부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없는 것까지는 이해했지만, 터미널을 빠져나와도 버스도 택시도 한 대 볼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도착한 날이 일요일이라서 운행횟수가 적었고, 실수로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서 발견 못했었던 것이었다.)


정녕 걸어야 하는 것인가! 하며 하필이면 한참 더운시간에 배낭을 메고 하염없이 도심을 향해 걷다가 버스정류장을 발견했다. 일단 아무버스나 타고 구글맵으로 보면서 예약한 숙소 근처에 오면 내려서 걷기로 했다. 그렇게 맘을 먹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동네 주민들이 하나둘 버스를 타려고 모이더니, 왠 낯선 동양인 커플이 퍼져있는 모습을 신기한듯 바라봤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숙소 주소를 보여주고 버스노선을 물어봤지만, 그 분들과 나 사이에는 한국과 불가리아 간의 거리만큼이나 큰 언어의 장벽이 있었다. 결국 주변에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남녀노소 할거 없이 둥글게 모여서 숙소를 찾아가는 법에 대해 옥신각신 하시더니 알아들을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불가리아어로 설명을 해주셨다. 나의 멍한 표정을 읽으신 한 분께서 손가락으로 버스 번호와 몇 번째에 내려야 하는지를 온 몸으로 설명해 주셨고 그제서야 나는 갈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불가리아에 오기 전에 불가리아는 빈부격차가 심해서 범죄가 많고 사람들이 불친절하니 조심하라는 얘기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어서 약간의 긴장을 하고 출발했는데, 처음 도착한 소피아는 생각보다 밝고 활기찬 도시 분위기였고 운이 좋은 건지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소피아에서 릴라수도원으로 가는 길에는 도로 공사로 오지 않는 트램을 기다리는 우리를 위해 직접 택시를 태워주시고 택시비까지 내주신 할머니도 만났었다. 플로브디프에서도 도착하자마자 우리에게 곳곳에서 길을 안내해주고 버스를 태워주는 현지인들 덕분에 길을 헤매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맹인모상이라고 했던가? 하마터면 몇몇 여행자가 전하는 일부만 듣고 불가리아는 무섭고 위험한 나라로 인식할 뻔 했다. 역시 직접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 Free Walking Tour가 시작되는 플로브디프 시청 광장 >

 

 

 잠시 플로브디프에 대해 설명하면, 플로브디프는 역사보다 오래된 도시라고 불릴만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에 하나로 약 8000년 전 부터 거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케도니아, 로마 제국,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으면서 풀푸데바, 필리포폴리스, 트리몬티움, 필리베를 거쳐 지금의 플로브디프가 되는 파란만장한 과거를 가지고 있고, 지금도 도시 곳곳에 그 과거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 파는 곳마다 유적들이 가득한 플로브디프는 고대 유적과 신도시가 공존하고 있다. > 

 

< 바로 전날 오페라 공연이 있었던 고대 로마 극장, 저런 극장에서 보는 오페라라니!! >

 

 

플로브디프의 도심은 크게 오스만시대의 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구시가지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이 있는 신시가지로 나뉘어 진다. 구시가지의 모습은 전형적인 오스만 주택들이 있어서 터키 사프란볼루의 차르쉬마을이나 안탈리아의 칼레이치 지역을 연상시킨다. 처음에는 이미 터키에서 많이 봤던 형식의 건물들이라 별 감흥이 없었는데, 소피아에서 했던 것과 같은 워킹투어를 통해 집집마다 어떤 사람이 살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각각의 사연이 깃든 집들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살아있는 역사로 느껴졌다.

 

 


< 1층 면적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던 시절에 지어진 가분수 건물 >

 

 

< 외국을 오고가던 부유한 상인들이 이런 다른 문화의 양식을 차용하여 지었다는 주택들 >

 

 

< 겉모습 뿐만 아니라 내부도 화려하다. >

 

 

신시가지는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보행자거리를 중심으로 상점과 레스토랑, 공원들이 들어서 있었다. 소피아에서 느꼈던 것처럼 공산주의 시절에 계획적으로 만들어진듯한 넓직한 거리가 너무 쾌적했고, 도심에 있는 거대한 공원이 도보 관광에 지친 여행자에게 쉴 공간을 주었다. 신시가지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은 보행자 거리 가운데 있는 로마 경기장이다. 역사가 깊은 도시인 플로브디프는 땅을 파는 곳마다 유적이 발견되고 유적 아래에는 더 오래된 유적들이 쌓여있어 층층이 연대가 다른 유적들이 퇴적층처럼 포개져있다. 로마식 전차 경기장 역시 도심에 건물을 짓기 위해서 땅을 팠다가 발견되었는데, 관람석의 일부만 발굴을 해서 공개한 상태였다. 나머지 부분은 도심의 보행자 거리와 주변의 건물들 아래에 묻혀있다는데, 플로브디프 시에서는 모두 발굴하고 보행자거리를 투명한 유리로 덮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이와 더불어 매년 선정하는 유럽문화수도에 2019년의 주인공은 플로브디프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지금보다 몇 년후가 더 기대되는 도시이다.

 

 

< 시내 한가운데 있는 고대 로마 경기장, 나머지 부분은 도로와 건물 밑에 묻혀있다는데 >

 

< 플로브디프의 보행자 거리, 이 거리 아래에 로마 경기장이 묻혀있다고 한다. >

 

< 2019년 유럽문화수도 플로브디프 선정을 축하합니다. >

 

 

처음에는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기조차 못할 정도로 생소한 도시였지만, 몇일 머물면서 도시 곳곳에 아름다운 유적과 건축물, 개성넘치는 벽화들이 가득한 곳, 넓은 보행자 거리와 공원에는 여유로운 사람들이 넘치는 플로브디프에 흠뻑 빠졌다. 역시 직접 가봐야만 알 수 있는 곳이 있다.

 

 

*** 플로브디프 여행 Tips ***

 

Tip 1. 플로브디브에도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Free Walking Tour가 있다.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6시에 시청앞 광장에서 출발한다.

 

Tip 2. 구시가지에 있는 오스만 주택들 중에 복원이 잘 된 집들은 박물관으로 운영중이다. 개별 입장료는 5 레바이지만, 5군데를 입장할 수 있는 Combined Ticket을 구입하면 입장료를 할인받을 수 있다. (15 레바, 2015년 7월)

 

Tip 3. 골목마다 박물관이 많아서 어딜 들어가봐야 할지 망설여진다면, House of Luka Balabnov와 House of Stepan Hindliyan, Pharmacy Museum을 추천한다.

 

Tip 4. 중앙 우체국 앞에 있는 Tsar Simeon's garden 이라 불리는 공원 끝에 있는 분수는 매일 저녁 9시부터 음악과 함께 분수쇼가 벌어진다.

 

Tip 5. 도시 곳곳에 식수대가 만들어져 있어서 따로 물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불가리아는 물이 깨끗한 나라라서 안심하고 마셔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