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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준비

[D-58] 스쿠터 배우기


20대 때에는 어느 곳을 가든지 열심히 걸어 다녔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서 보다는 천천히 여유롭게 즐기고 싶었다. 지도를 보고 한 시간 이내의 거리라고 생각되면 무조건 걸어서 갔었다. 덕분에 길을 헤매면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동네의 속살을 볼 수도 있었고, 친절한 현지 사람들의 호객질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벌써부터 걷는 게 귀찮고 힘들다. 아마도 내 차가 생기고 나서부터인 것 같다. 이제는 여행을 가서 조금 걸어야 되는 상황이 오면 일단 대중교통 수단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몇 해 전 부터는 시티투어 버스를 타기도 했다. 예전에는 시티투어 버스는 체력이 약한 노약자용이라고 폄하했었는데, 이제는 정말 편리하고 경제적인 여행 방법이라고 추천을 하고 다니고 있다.


세계일주를 앞두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체력도 지킬 수 있는 이동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자전거였다. 재작년 인도네시아의 길리뜨라왕안에 갔을 때, 그 섬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교통수단은 절대 사용할 수 없는 친환경 섬이라서 마차, 자전거가 주 교통수단이었다. 안타깝게도 아내는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상황이라 뜨거운 태양 아래에 뚜벅뚜벅 열심히 걸어 다녔다. 꼭 자전거를 배우고 말겠다는 아내의 결심은 작년에 이루어졌다. 나도 이제는 나란히 자전거를 타면서 여행할 수 있겠다며 좋아했고, 그 첫 번째 시도로 경주 자전거 여행을 도전했다.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나는 문제 없었지만, 아직 운전도 서툴고 근력도 떨어지는 아내를 챙기며 도심을 달리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 자전거도 힘들다.


어느 여행지를 가더라도 자전거만큼이나 빌리기 쉬운 게 스쿠터다. 그렇다면 스쿠터를 이용해서 시내 이동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나이를 먹도록 한 번도 스쿠터를 운전해본 적이 없었다. ㅉㅉ



출처 : https://unsplash.com/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스쿠터 타는 법을 배우고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생각은 수 년 전부터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스쿠터를 배웠다. 오전 근무 중에 같이 일을 하던 송대리와 우연히 스쿠터 얘기가 나왔는데, 송대리 역시 스쿠터를 타 본 적이 없다는 말에 당장 오늘 점심시간에 배우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수개월 전부터 스쿠터 타보게 해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었던 옆 부서 차대리를 불러내서 낡은 스쿠터로 연습했다. 차대리 차선생 고마워~~


자전거를 탈 줄 알았기에 스쿠터 운전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시동 거는 법만 배우고는 바로 달릴 수 있었다. 자전거보다 쉽게 가속이 되고 속도감이 있어서 스릴이 있었다. 아마도 처음이라 그렇겠지만, 완~전 재미있었다. 왜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이제야 알았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두 달도 안 남은 세계일주만 아니었으면 한 대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이제 꿈꾸던 여행지를 나란히 걷는 상상이 고풍스러운 도심을 가르는 스쿠터를 탄 부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