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를 계획하면서 Round world 항공권 대신에 저가 항공편을 이용하려다 보니 매번 대륙간 이동 방법을 조사해야 했다. 그러던 중에 매년 늦가을에 대서양을 횡단하는 크루즈 여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름에는 지중해를 누비던 크루즈선이 겨울에는 카리브해에서 운용이 되기 때문에 여러 크루즈선들이 일년 중에 가을에는 지중해에서 카리브해로, 봄에는 다시 카리브해에서 지중해로 이동한다. 마침 나의 여행 일정과 대서양 횡단 크루즈 시점이 맞아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미국 올랜도까지 크루즈선을 이용해서 16박 17일 동안 천천히 대서양을 건너가게 되었다. (자세한 예약과정은 이전 포스팅 참고)
< 대서양 횡단 크루즈 여행에 탔던 NCL사의 Spirit호 >
< 배의 한가운데인 아뜰리에, 하루에도 수어번을 지나쳤던 곳 >
몇 해전에 이스탄불에서 처음으로 크루즈선을 봤을 때, 거대한 선체와 호화스러운 시설에 감탄했었다. 당시 ‘저런 크루즈 여행은 엄청나게 비쌀테고, 저기 보이는 저 사람들은 돈많은 노인들이 많겠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예약한 크루즈는 비교적 장거리 일정임에도 항공권에 비해 크게 비싸지 않았고, 탑승객들은 다양한 연령대와 국적의 사람들이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분위기가 좋았다. 보름이 넘는 기간동안 배에 갇혀지내면 답답하지 않을까했던 우려했었지만 5번의 기항지 여행이 있어서 가끔 땅을 밟을 수도 있었고 선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프로그램과 매일 저녁 대극장에서 다양한 쇼를 볼 수 있어서 심심할 틈이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감동시켰던 것은 선내 레스토랑이었다. 눈을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언제든지 먹을게 풍족했고, 유럽 여행하면서 선뜻 가기 힘들었더 코스 정찬 요리를 매일매일 먹을 수 있었다. 하루 세끼를 스테이크로 채울 수도 있으니 배낭여행자에게 이곳은 천국과도 다름없었다.
< 매 끼니마다 화려했던 나의 식탁 >
< 13층 옥상의 야외 수영장, 중형 크루즈라서 워터 슬라이드 따위는 없었지만 바다 위의 자쿠지는 정말 최고 >
사실 크루즈 여행은 지금까지의 배낭여행과 성격이 많이 달랐다. 내일은 어디에서 자야하나, 뭘 먹으러 어느 레스토랑에 가야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해있었기에 이동에 대한 걱정도 필요없었다.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됐다. 그래서인지 선내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미소 띈 표정으로 여유롭고 쾌활한 분위기였다. 잠시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 짧은 시간에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쫓기는 일정이 없었기에 편하게 얘기를 나눌 수도 있었다. 우리 부부는 2000여명의 승객들 중에 손에 꼽히는 동양인이었고 게다가 젊었기에 관심가지고 말 걸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항지 여행을 같이 하기도 하고 같이 운동도 하고 나중에는 객실에도 초대받아 작은 파티를 열기도 했었다.
사실 크루즈의 밝고 유쾌한 분위기는 선내 여기저기에서 고생하는 승무원들의 역할이 컸다. 언제 어디서 마주쳐도 밝게 웃고 인사를 하고 친근하게 대화를 걸어주는 크루들 덕분에 항상 기분이 좋았다. 레스토랑에서도 단순히 음식만 전달하는게 아니라 잠시 멈춰서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카지노의 딜러들도 게임 중에 손님과 유쾌하게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함께 즐기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크루즈 분위기를 즐기던 어느날 저녁, 우리 테이블을 담당해 주었던 인도네시아 출신 승무원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지금 타고 있는 이 배만 6년째 타고 있다는 뚜한은 8개월은 오프데이 없이 계속 일하고 2개월의 휴가를 보낸다고 했다. 보통의 직장인은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쉴 수 있지만, 일하는 곳이 곧 집인 이들에겐 항상 웃는 얼굴로 밤낮없이 일하는 게 쉬운일이 아니라고 한다. 문득 생각해보니 2000여명이 넘는 승객과 1000명에 가까운 승무원이 한 배를 타고 살고 있었고, 누군가는 그 엄청난 양의 쓰레기처리와 빨래와 같은 궂은 일들을 하고 있었기에 내가 편안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나는 비용을 지불했고 그들은 그들의 직업으로 일을 했겠지만 같은 공간안에 지내면서 서로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그들의 친절에 더욱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항해 마지막날에 갈라쇼가 마치고 나서 하우스키핑부터 레스토랑, 안전요원 등등의 크루들이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하는데 한 배를 탔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으로 울컥 감동이 밀려왔다.
< 마데이라 섬의 일몰, 배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은 환상적이었다. >
처음 경험했던 크루즈 여행은 마치 천국의 한 조각을 맛본 듯이 달콤하고 황홀했다. 흔히 말하는 가성비로 따지자면 정말 아깝지 않는 선택이었다. 한나절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17일이나 걸려서 이동하긴 했지만, 그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여행자가 즐기기 힘들었던 여러가지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배에서 내리자 마자 우리는 다음 크루즈 여행을 검색하고 있다. 남미 크루즈가 여행 일정과 맞는 것 같던데...
*** 크루즈 여행 Tips ***
Tip 1. 크루즈 여행은 비싸다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출항일 9개월 전에 예약하거나, 출항 직전 1개월, 웨이브 시즌이라 불리는 1 ~ 3월 중에 예약한다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선실을 구할 수 있다. 특히 대서양 횡단 크루즈와 같이 재배치 크루즈의 경우 여행 기간에 비해 더 저렴한 편이다.
Tip 2. 크루즈 선실은 크게 Inside, Window, Balcony, Suite 로 나눌 수 있다. Inside는 내측 선실로 창문이 없는 방이고, Window는 Inside 선실에 열 수 없는 작은 창문이 달린 방이다. Balcony는 Inside와 같은 크기의 방이지만 문을 열고 나가서 바다를 볼 수 있는 테라스가 있는 방을 의미하고, Suite 룸은 넓고 큰 방에 테라스가 있는 방이다. 나는 가장 저렴한 Inside에 머물었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선베드, 게임룸, 카페, 레스토랑, 극장 등에서 보냈기에 전혀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방에 불을 끄면 낮인지 밤인지 모른다는 정도? 크루즈 여행이 매력적인 또 하나 이유는 가장 저렴한 방에 묵는 손님이나 비싼 방에 묵는 손님이나 방에서 나오면 똑같은 조건으로 서비스를 받는 다는 점이다. 아주 약간의 혜택은 있겠지만, 동일한 메뉴의 식사를 하고 쇼를 관람할 때는 선착순 입장이었기에 어떤 자리에서도 Inside 손님이라는 차별을 느낄 수 없었다.
Tip 3. 크루즈 선사에 따라 등급의 차이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프리미엄급과 일반급을 나누는 기준은 승객대비 승무원의 비율로 갈린다. 프리미엄급 크루즈의 경우 승객과 크루의 비율이 1:1 이상이고 일반 크루즈의 경우 1:2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밀도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그만큼 비용도 비싸다. 대표적인 프리미엄 크루즈 선사로는 Cunard Line, Holland America, Celebrity Cruise 등이 있고, 대중적인 크루즈 선사로는 Norwegian Cruise Line, Royal Caribbean, Costa Cruise 등이 있다.
Tip 4. 일반적으로 크루즈 여행을 할 때에는 반드시 정장, 이브닝 드레스를 가지고 가야한다. 레스토랑에 따라 드레스 코드가 엄격한 곳도 있고, 항해 중에 Formal Night 라고 불리는 선상 파티의 날이 여러번 있는데 이때는 반드시 자~알 차려입고 참석하는 것이 예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번거로운 드레스 코드를 과감하게 덜어낸 크루즈 선사가 있으니 내가 이용했던 Norwegian Cruise Line 이었다. 메인 레스토랑에 갈 때만 깔끔한 캐주얼을 입어주고 평소에는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Formal Night 같은 파티는 캐주얼 파티로 대체되어 있었다. 이런 캐주얼 크루즈는 복장 뿐만 아니라 식사 시간이나 테이블 위치도 자유로워서 격식에 벗어나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Tip 5. 객실 비용에 대부분의 서비스 비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주류와 탄산음료는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물, 커피, 탄산이 없는 쥬스 종류는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에 크루즈를 타는 동안에 술과 탄산을 잠시 끊는다는 생각으로 버텨도 상관없지만, 기름진 음식때문에 맥주와 와인이 땡기는 게 사실이다. 배를 탈 때나 기항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서 들고 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접으시라. 물은 들고 탑승이 가능하지만, 그 밖의 것들은 반입이 불가능하다. 면세 구역에서 산 와인이나 술의 경우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반입할 수 있지만, 아주 고가의 술이 아니라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Tip 6. 크루즈 여행에 도움이 되는 물건들 :
- 텀블러 : 뷔페식당 등에서 물이나 커피를 받아서 들고다니며 마시기 유용하다. 선내에서 생수는 판매되는 제품이기에 물병에 물을 채우는 행동은 눈치가 보이니 300ml 정도의 텀블러가 적당하다.
- 수영복 : 선상 수영장이나 자쿠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려면 필수품.
- 읽을 거리 : 도서관에는 영문판 책이 대부분이다. 편하게 읽을 책을 준비하자.
- 비상약 : 크루즈 안에 병원이 있으나 유료로 운영되고 상당히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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