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크루즈나 동남아 크루즈의 경우 일정 중에 어떤 도시에 기항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지만, 대서양 횡단 크루즈는 대륙을 이동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사실 기항지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았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항을 출발해서 3일째날 마데이라 섬을 들르고, 11째날부터 14일째날까지 연속 4일간은 카리브해의 섬들을 방문했다. 이름도 낯선 그 섬들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Madeira>
바르셀로나를 떠난지 3일째 되는 날, 일출을 보러 갑판에 나가자 멀리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햇빛이 깎아지는 해안 절벽을 붉게 물들였다.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배는 마데이라 섬을 돌아 푼샬(Funchal)의 선착장에 정박했다. 선상 카드를 찍는 간단한 절차를 거쳐서 포르투갈령의 마데이라 섬에 발을 딛었다. 이미 선착장에는 투어 프로그램 별로 버스들이 대기 중이었지만, 우리는 별도의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하지 않아서 푼샬 중심지까지 걸어갔다.
마데이라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축구스타 호날두의 동상이었다. 대서양의 외진 이 섬이 세계적인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고향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시 곳곳에는 호날두의 사진과 기념품이 있었고, 아직 현역으로 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한 박물관까지 있을 정도였다.
마데이라는 화산활동으로 생긴 섬으로 포르투갈의 제주도와 같은 곳이다. 곳곳에 절경을 간직하고 있는 이 섬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트랙킹을 하는 것이 좋지만, 투어를 신청하지 않은 우리는 그냥 푼샬에 머물며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를 돌아다녔다. 푼샬은 그냥 거리를 거니는 것 만으로도 참 예쁜 도시였다. 언덕을 따라 빼곡히 자리잡은 집들이 부산의 감천 문화 마을을 연상시켰고, 언덕 여기저기에 고풍스러운 교회 건물과 제국주의 시대의 요새가 있어서 골목을 걷는 재미가 솔솔했다. 해변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푼샬의 꼭대기 마을에 내려서 토보간이라는 썰매같이 생긴 탈 것을 타볼 수도 있었지만, 그냥 해변가에서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 마데이라의 자랑,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 마데이라 역사 거리는 화려한 색상과 벽화로 여행자의 눈을 즐겁게 한다. >
<Antigua and Barbuda>
마데이라를 떠나고 6일간은 360도를 둘러봐도 수평선밖에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를 지나왔다. 그러다 500여년 전에 콜롬버스가 그러했듯이 서인도 제도에 도착했다. 카리브해의 첫번째 기항지는 앤티가 바부다(Antigua and Barbuda)라는 작은 섬나라의 수도 St. Johns였다. 한 나라의 수도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시골 어촌 마을 정도의 아주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배에서 내려서 선착장을 빠져나가자 마자 전통공연단의 흥겨운 북소리가 울렸고, 그 뒤로는 섬 곳곳에 있는 해변으로 관광객을 태워가려는 택시기사들이 호객이 끝없이 이어졌다. 간신히 택시 호객을 뿌리치고 나자 면세로 귀금속, 시계,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작디작은 이 나라가 먹고 살기 위한 돈은 우리같은 크루즈 손님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 같아서 이들의 모습이 이해는 되면서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이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관광객이 모여있는 쇼핑거리를 벗어나 현지인이 거주하는 마을로 들어서자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진 카리프풍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들이 사는 모습을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었는데, 일요일인 탓에 거리에 상점은 모두 문을 닫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에 간 탓에 훵한 거리의 모습 밖에 볼 수 없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왔다는 알렉스 아저씨 말로는 서인도 제도 사람들이 대부분 종교활동에 굉장히 충실한 편이라서 일요일이면 거리에 사람이 없다고 한다. 비록 활기차게 생업에 몰두하는 모습은 못 봤지만 이들의 일요일이 어떤 모습인지는 제대로 본 것 같다.
< 배에서 내려다 본 St. Johns 전경 >
< 알록달록한 카리브해 분위기의 주택가 >
<St. kitts and Nevis>
전날 갔었던 앤티가 바부다 만큼이나 생소한 이름의 나라 세인트키츠 네비스 (St. kitts and Nevis)의 Basseterre에 정박했다. 배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은 St. Johns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서인도 제도의 작은 섬나라들은 다들 비슷비슷한 모습일 거라 생각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택시를 타고 그림같은 카리브해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러 떠나고, 일부는 면세 쇼핑 구역에서 열심히 흥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카리브해에 몸을 담그는 것은 멕시코 여행으로 미루고 이 작은 섬나라의 마을을 돌아보는 셀프 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1493년 콜롬버스가 발견했다는 세인트키츠는 서인도 제도의 나라들 중에 가장 오래된 식민지 중에 하나로 1983년에 독립하기까지 20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다. 그래서 아직도 지명을 비롯해서 도시 곳곳에 영국의 흔적이 남아있다. 거리에는 식민지 시대의 건물과 교회 등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전형적인 콜로니얼풍의 도시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인구가 3만 2000여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이기에 수도라고 해도 두 세시간 돌아본 것으로도 더 이상 가볼만 한 곳이 없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해변으로 가서 에매랄드빛 카리브해를 즐기다 올 걸 그랬나하는 후회와 함께 일찍 승선했다.
<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을 본 떠 만들었다는데, 도대체 어는 부분인지... >
<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카리브해에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교회 >
<Sint Maarten>
서인도 제도에서 3번째로 머물렀던 곳은 신트 마르턴(Sint Maarten)이라는 네덜란드 자치령의 섬이었다. 섬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서 북쪽은 프랑스령, 남쪽은 네덜란드령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특이한 섬이다. 이 곳도 카리브해 크루즈 여행의 중요 거점으로 대부분의 크루즈선이 더치 사이드인 필립스뷔르흐(Philipsburg)의 외곽에 있는 항구에 정박을 한다. 우리가 탄 배가 접안을 할 때 이미 Holland, MSC, Royal Caribbean 사의 대형 크루즈선들이 자리를 잡고 승객들이 하선하고 있었다.
선착장에 내려서 느낀 첫인상은 앞선 두 나라에 비해 아직도 강대국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인지 잘 정돈된 동남아 휴양지같은 모습이었다. 수도인 필립스뷔르흐는 에매랄드빛 카리브해 백사장을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었고, 해변을 따라 쇼핑가, 레스토랑, 호텔이 이어져있었다. 하지만 신트 마르턴의 명소는 따로 있었다.
신트 마르턴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다름 아닌 공항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공항이라 불리는 프린세스 줄리아나 국제공항을 보기 위해 택시나 버스를 타고 마호 해변(Maho Beach)로 이동한다. 작은 섬인 신트 마르턴의 공항은 해변가에 위치하고 있는데 활주로 끝부분이 해수욕장과 맞붙어 있어서 해변에서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다.
마호 해변가의 카페에 가면 그날 이착륙하는 비행기의 스케줄이 붙어있고, 그 시간대가 되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해변가에 모여든다. 내가 도착하고 잠시 후에 운 좋게도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온다는 KLM 항공사의 보잉 747 대형 여객기가 착륙했다. 수평선 끝에 반짝이는 점처럼 보이던 거대한 여객기가 점점 다가와서 사람들의 머리를 스치듯이 지나서 착륙하는 놀라운 광경에 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못하고 입만 벌리고 있었다. 그 후로도 작은 경비행기와 중형 여객기들이 줄줄이 착륙했고 그 때마다 난생 처음보는 비현적인 풍경과 특별한 경험에 들떠 얼굴이 새까맣게 타는 줄도 몰랐었다
착륙 장면만큼인 재미난 광경은 이륙할 때 벌어진다. 거대한 여객기가 해변 끝 활주로로 다가오면서 기장님은 조종석 창문을 열고 해변가에 있는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신다. 그리고 해변을 향해 비행기 엉덩이를 돌리고는 이륙하는데, 그 순간 엄청난 제트 엔진의 후류에 수십명의 구경꾼들은 해변으로 밀려가 물에 빠지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공항 펜스에 매달려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건장한 청년들도 몸이 옆으로 들릴 만큼 강력한 바람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된다. 어찌보면 상당히 위험해 보이지만, 제트 엔진 후류에 몸을 맡기고 날아보는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서 넘어져서 다리가 까지면서도 사람들은 열광했다.
< Sint Maarten의 수도 Philipsburg. 수도라기 보다는 휴양지같은 곳 >
< 합성이 아닙니다. 프린세스 줄리아나 공항에는 흔한 풍경 >
<U.S. Virgin Island>
대서양 횡단 크루즈의 마지막 기항지는 미국령의 버진 아일랜드(Virgin Island) 였다. 앞선 기항지와 달리 미국 땅인 버진 아일랜드는 하선 전에 까다로운 입국 심사가 있었다. 어짜피 최종 목적지인 Port Canaverel에 가려면 입국 심사가 필요했기에 기항지에서 미리 심사를 받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겠지만, 2000여명의 승객이 한꺼번에 심사를 받아야 했기에 만만치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다행이 크루즈 내의 대극장에서 심사가 있었기에 입국심사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버진 아일랜드에 내려설 수 있었다.
배에서 내리자 마자 보이는 패스트푸드 점들이 미국땅에 도착했음을 실감나게 했다. 크루즈 선착장에서 St. Thomas 시내까지는 Frog bus라고 불리는 오래된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면세 구역으로 유명한 곳이라일까? 시내는 거대한 면세점을 연상시킬만큼 온통 쇼핑을 위한 공간뿐이었다. 카리브해의 컬러풀한 마을이나 대해양시대의 요새를 기대하고 찾아간 우리는 완전히 번지를 잘못 찾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 여행이 아니라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이었더라면 이런 저런 쇼핑을 했을 텐데, 아무리 싸게 판다고 해도 우리는 선뜻 뭔가를 사기엔 이미 어깨 위의 짐이 버거웠다.
< 미국령의 휴양지라서인지 호화요트가 많다. >
< 도시 전체가 면세점 이구나... >
16박 17일의 크루즈 여행 중에 마데이라와 카리브해의 4개의 섬을 방문했다. 마치 신기루처럼 망망대해에 홀연히 나타난 섬들은 아마 크루즈 여행이 아니었다면 이름조차 몰랐을 곳, 절대 와보지 않았을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도 다시 찾을 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련한 느낌이 든다.
< 기항지를 떠날 때마다 바다 위에서 보는 야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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