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하여 미국 올랜도까지 16박 17일의 크루즈 여행. 중간 중간 기항지에 들르는 5일과 출발하는 날, 도착하는 날을 제외해도 무려 10일을 망망대해 한가운데 있는 배위에 있어야 하는데 지루하지는 않을까? 장기 여행 중에 휴가라고 생각하고 계획했기에 지루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선상 데이에도 끊임없는 크루즈 프로그램으로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나갔다. 과연 크루즈에서만 보내는 선상 데이의 하루는 어떨까?
<기상>
우리가 머물었던 가장 저렴한 내측 객실은 창문이 없다. 물론 공조 시스템이 있어서 환기는 문제없지만, 전등을 끄면 밤인지 낮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생체 시계의 동작을 생생하게 테스트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위해 알람 소리에 일어난다.
조식은 간단한 코스요리로 먹을 수 있는 메인 식당도 있지만, 주문하고 서빙받는 번거로움이 귀찮아서 주로 최고층에 있는 뷔페식당으로 갔다. 주문하면 즉석에서 원하는 재료로 만들어주는 오믈렛과 바로 구운 따끈한 빵, 베이컨, 오렌지 주스를 들고 선미 테라스로 가서 아침 햇살과 바다 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며 선상 신문을 꼼꼼하게 보면서 오늘 참여할 만한 프로그램이 있는지 살피며 하루 일정을 세운다.
< 아침부터 기름지게 채워보자! >
< 오늘은 뭐할까? >
<오전>
보통 아침시간에는 특별히 재미있는 선상프로그램이 없었다. 주로 빙고게임이나 서바이벌 랭귀지 클래스, 운동 프로그램, 면세품 세일 등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오전에는 주로 운동을 했다. 하루 세끼 이상을 기름진 음식을 먹다보니 크루즈에서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옥상에 있는 조깅 트랙을 뛰거나 아내와 탁구를 치면서 간단하게나마 운동을 한다. 운동을 하고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거나 게임룸에서 부루마블이나 퍼즐같은 보드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주로 보내고, 그동안 밀린 일기를 쓰거나 남은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크루즈의 최고층의 열린 공간에는 수영장, 스포츠 바, 자쿠지, 선베드, 조깅 트랙, 골프장, 농구장 등이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면 매일 점심에는 옥상 수영장 주변에 열리는 바베큐 파티에서 갓 구워진 스테이크, 소시지 등을 받아 들고 뷔페식당으로 가서 다른 음식들을 담아 식사를 했다. 살이 안 찔 수가 없는 생활이다.
< 크루즈에서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
< 모노폴리보다는 대항해시대가 어울릴 것 같은 게임룸 >
<오후>
점심 식사 시간이 지나면 선내 여기저기에서 열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냅킨 접기, 타월 접기 같은 실용적인 과정과 살사, 맘보, 탱고 등의 댄스 강좌가 매일 있었고, 가끔씩 저글링 배우기, 마술쇼와 같은 흥미로운 프로그램도 있어서 매일 오후는 선내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기 바빴다. 길어야 한시간 정도의 짧은 강좌이기에 깊이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배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는 충분했다.
선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 시간에는 수영장 근처 선베드에서 한가하게 멍때리는 시간을 보냈다. 스페인에서 카리브해로 향하는 대서양은 11월 중순임에도 낮 기온이 25도 정도로 따뜻했다. 사실 햇살은 뜨거웠다. 따끈한 햇빛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어울어져서 일광욕하기 더 없이 좋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을릴 피부도 남지 않은 우리는 그늘에 선베드를 펴고 끝없는 수평선과 수시로 변하는 구름을 보며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8개월 가량 이어진 여행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었기에 크루즈에서 지내는 동안 선베드에서 멍하니 있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 수석 주방장의 과일 조각 쇼 >
< 저글링 세계챔피온에게 저글링 전수 받기 >
< 이미 다 까먹은 냅킨 접기 수업 >
< 종일 그늘지고 전망이 좋았던 선미 테라스 선베드 >
<저녁>
점점 그림자가 길어지고 바다 위로 석양이 질 때쯤이면, 선베드를 정리하고 갑판으로 올라가서 석양을 감상했다. 서쪽으로 항해하는 배였기에 붉게 물든 바다를 가르며 해를 향해 달리는 모습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해가 지면 방에 가서 메인 식당에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프리스타일 크루즈라서 특별한 드레스 코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녁 식사 때는 가능하면 긴바지와 단정한 상의를 입는 것이 예의였다. 저녁 식사는 가능하면 뷔페가 아닌 메인 식당을 이용한 것은 그동안 여행하면서 선뜻 가보지 못했던 정찬 코스 요리를 실컷 즐기기 위해서 였다. 입구에서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으면 가격이 적혀있지 않은 메뉴판을 받는다. 그리고 내 위가 허락하는 수준에서 원하는 요리를 마음껏 주문하면 된다. 처음에는 식전빵마저도 너무 맛있어서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이미 배를 채웠는데, 점점 노하우가 쌓여서 메인 요리와 어울리는 에피타이저와 디저트를 고르고 빵은 간간이 입을 정리하는 여유를 부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의 첫 정찬은 허겁지겁 와구와구 였던 것 같다.
석양을 가르며 달리는 배위에서 창밖으로 바다를 보며 매일 정찬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여유는 크루즈를 타지 않았더라면 느낄 수 없었으리라. 어쨌든 우리는 식사 만으로도 이미 본전은 회수했다고 자부할 만큼 실컷 먹었던 것 같다.
< 엄청나게 넓었던 메인 레스토랑 >
<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가벼운 산책을 하고 대극장으로 향했다. 대극장에서는 매일 저녁 두차례 쇼가 열렸다. 선사에서 초청한 여러 공연단이 뮤지컬, 서커스, 마술쇼, 현대 무용, 코메디 등 다양한 양질의 쇼를 보여주었다. 객실 등급에 따른 차별이 없었기에 우리는 일찍 입장해서 무대 바로 앞의 로얄석에서 쇼를 즐길 수 있었다. 한국에서였다면 꽤나 비싼 가격으로 봤을 법한 쇼를 한번도 질러보지 못했던 로얄석에서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크루즈 여행은 우리를 굉장히 만족시켜주었다.
쇼가 끝난 후에도 배 이곳저곳에는 흥이 넘치는 파티들이 많았다. 선내 나이트클럽에서는 댄스경연으로 스포츠 펍에서는 축구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으로 시끌벅쩍했고, 선상 카지노에서는 딜러들의 유쾌한 농담으로 호탕하게 웃으며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로 활기찼다.
< R석? S석? 여긴 선착순! >
< Shell we dance? >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하염없이 달리는 여행이라고 지루하거나 답답할거란 편견은 이번 여행으로 완벽히 깨졌다. 오히려 기항지에 들러서 돌아다니던 날보다 바쁘게 즐겼던 선상데이가 있었기에 크루즈 여행은 하루하루가 알찼던 것 같다. 충분히 쉬고, 먹고, 즐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꼈던 크루즈 여행은 긴 여행에 지쳐가던 우리에게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었다.
*** 크루즈 여행 Tips ***
Tip 1. 매일 저녁 다음날 프로그램이 적혀있는 선상 신문이 방으로 배달된다. 참가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미리 체크해두고 10분 일찍 가서 기다리자.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가볍게 시간을 보내는 위주로 짜여져 있으니 큰 부담없이 참가해서 즐기면 된다.
Tip 2. 맘에 드는 프로그램이 없는 날은 아침 일찍 선베드에 자리를 잡자. 아침식사 시간이 지나면 좋은 자리는 거의 남지 않는다. 비치 타월과 책으로 자리를 잡아 놓고 식사를 하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자리만 잡아 놓고 1시간 이상을 빈자리로 두지 않도록 주의하자. 선베드는 공용 공간이다.
Tip 3. 크루즈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특히 선상데이가 많은 코스라면 규칙적인 운동을 하자. 눈을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항상 먹을 거리가 있어서 순식간에 살이 찐다. 여행이 끝날 때 쯤이면, 크루즈 여행자들 사이에서 갑자기 늘어난 뱃살을 가르키며 ‘Cruise Baby’ 라고 부르는 농담을 쉽게 들을 수 있다.
Tip 4. 선상 카지노를 즐기려면 미리 달러 현금을 준비해서 가자. 카지노에는 환전소와 ATM기가 있지만, 수수료가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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